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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g.png  ㅣ  주나그네 목사
이  ㅣ  이승구 교수



sdg.png : 반갑습니다. 교수님. SDG 개혁신앙연구회의 첫 번째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되셨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우리 한국 신학의 확립과 확장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활동하시고 여러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계신 합동신학대학교대학원 조직신학 교수님이신 이승구 교수님을 모시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혁 신앙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교수님을 많이들 아십니다. 하지만 사실 교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도 많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 중 한 가지가 교수님의 과거사인데요.(웃음)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거치는 과정에서 개혁신앙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부터 얘기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 : 초등학교 1학년때 처음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어요. 어느날 놀러 나갔는데 다른 애들은 없고 한 친구만 있었죠. 그 친구가 여동생과 누나랑 어디를 가는 중이었어요. 어디를 가냐고 했더니 교회를 간다면서 같이 가자고 하길래, 부모님께 여쭤보니 아침밥을 먹고 가라고 하셨죠. 그 날이 주일이었던 거에요. 제가 아침밥을 먹고 가는 바람에 그 친구는 그날 지각했을 겁니다.(웃음) 그 때가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어요. 교회에서는 1월부터 2학년으로 올라가는지라, 저는 신입반 4주를 하고 바로 2학년이 되었어요. 흥미롭게도 그때부터 계속 주일마다 출석을 했어요. 3학년 연말에는 교회에서 시상을 하는데 개근상을 주더라구요. 저는 의식하지 못하고 다녔는데 개근상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던 거죠.


sdg.png : 그렇습니까? 그럼 원래 불신자 가정에서 자라나셨군요.


이 : 네. 안 믿는 가정이었어요. 제가 처음 교회에 나갔고, 저희 어머님이 제가 초등학교 3학년 중순 즈음 되었을 때 부흥회에 출석하시기 시작한 뒤로 우리 가정이 예수를 믿기 시작했죠.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장단꾼이셨어요. 그 때 할아버지, 할머님은 그 동네에서 처음 믿는 분들이셨죠.


sdg.png : 선교 초창기때였겠군요?


이 : 아마 그랬을 겁니다. 그러니까 어머님이 유치원에 다니시던 시절에는 할아버지, 할머님만 믿으시고, 어머니는 계속 믿지 않으셨던 거죠. 하지만 저는 친구를 따라 출석을 하면서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시다.‘ 이런 생각을 가졌죠. 


sdg.png : 그런 생각은 언제쯤부터 하시게 되셨습니까?


이 : 주일 학교에서부터 강조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지요. 믿지 않는 친구들을 교회로 인도하려고 노력도 했었는데,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어리석은 짓도 했었어요. 예쁜 카드에 성경말씀을 써서 친구 책가방 속에 슬쩍 넣은 거에요. 나중에 친구가 “니가 넣고 갔지?” 그러면, “그래. 내가 그랬다.” 그래야 되는데 아니라고 했죠.(웃음)


sdg.png : 하얀 거짓말을 하신거네요.(웃음)


이 : 전도하기 위해서 거짓말도 한 거지요.(웃음)


sdg.png : 어린 마음에 전도의 열정이 있었던 거네요.


이 : 네. 자연스럽게.


sdg.png : 그럼 자연스럽게 중고등학교 때도 신앙 생활을 계속 하셨겠군요.


이 : 예. 중학교 때 처음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sdg.png :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어린 나이인데요.


이 : 자연스럽게 한 거죠. 그냥 (목사가 되는 일이) 다른 일보다 재미있었고, 그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 거죠.


sdg.png : 일종의 내적 소명을 어릴 적에 받으신 거네요.


이 : 그렇죠. 목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에 아주 자연스럽게 생긴 거죠.


sdg.png : 그 당시에 또래 분들이 다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그런 환경(분위기)이었나 봅니다.


이 : 그건 나중에 그랬고, 오히려 우리를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이 열심있는 분들이셨어요. 예를 들어서 그 당시 선생님 중 한 분은 서울 치대를 다니시던 분이셨는데, 야간에 칼빈신학교도 같이 다니셨죠. 그리고 나중에는 치과의사로 일하시면서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다니셨어요. 아주 열심이셨죠. 그런 분들이 아이들을 가르치셨고, 그 때 출석했던 교회도 한국의 전통적인 장로교회였죠. 이 전통적인 장로교회라는 표현에는 몇 가지 요소가 들어 있어요. 한편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근거해서 개혁신앙의 전통이 강조되었죠. 당시 중등부를 지도해 주시던 분이 총신대학교 1학년 학생이셨는데, 바로 지금 총신대학교 교수님이신 정훈택 교수님이세요. 그 분이 직접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성경공부 단계별 교재를 만드셨어요. 등사해서 주보도 잘 만드시고, 글씨도 예쁘게 잘 쓰셨는데(웃음), 그렇게 교재를 만드셔서 자연스럽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가르치셨던 거죠.

 또 다른 전통적인 장로교회의 요소로 어떤 것이 있었는가 하면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성도들의 신앙 분위기가 달랐어요.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전통적인 개혁주의인데, 신앙하는 분위기는 한국 교회가 늘 그렇듯이 철저하게 개혁주의적이지 않은 것이죠. 한국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전통적인 장로교회의 모습이었던 거죠.


sdg.png :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보수적인 교회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이 : 네. 보수적인 교회요. 따지고 보면 굉장히 좋은 개혁파 신앙을 가지고 있었죠. 예를 들어 제가 고등부 시절 전도사님 서재에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를 빌려서 읽고 그랬어요. 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박형룡 박사님의 조직신학 서론이었어요. 그것을 열심히 노트 필기하면서 읽었어요.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학생들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칼빈이었죠. 엄밀한 관점에서 본다면 철저한 칼빈주의 교회는 아니었지만 전도사님들이나 강도사님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건 개혁주의였어요. 상당히 좋은 조합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한국 교회의 모습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성경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개혁신앙을 생각하게 되는,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났어요.


sdg.png: 보통 어린 시절에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느냐 하는 것이 인격과 정서뿐 아니라 신앙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교수님께서는 그야말로 어려서부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연스럽게 개혁신앙에 입문하셨군요.


이 : 네. 그런 셈이죠. 감사한 일입니다. 당시 모든 사람이 다 개혁주의를 추구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공식적으로 천명한 신학은 개혁주의였던 거지요. 그게 감사하지요.


sdg.png : 중학생 시절부터 목사가 되고자 하는 꿈이 있으셨다면, 이후에 줄곧 이 목표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셨던 건가요?


이 :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고등부를 지도하시던 목사님이 얼마 전에 남서울 교회에서 은퇴하신 이철 목사님이세요. 그 분이 대학을 졸업하고, 신대원에 들어갔을 무렵에 교회 청년들이 주일 학교 봉사를 열심히 하셨어요. 그 분들이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여러 특강을 해주셨죠. 아까 말씀 드린 치과 선생님께서는 과학 파트를 맡아 진화론에 대한 특강을 해주셨어요. 저는 학교에서 진화론에 대해 교육받기 전에 미리 교회에서 진화론이 옳지 않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은 좋은 도전도 되고,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해요. 그 때 이철 목사님이 지도 교사로서 웨슬리에 대한 특강을 해주셨는데, 웨슬리가 홀리클럽을 조직해서 활동했던 이야기에 굉장히 도전을 받았었죠. 그 당시 저와 친구들은 SFC(학생신앙운동)라는 용어를 많이 썼어요. 그 운동을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각 학교에서 해야 한다는 도전을 받은 거죠. 그래서 홀리클럽을 모델로 삼아서 친구들을 모아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어요. 당시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모이겠다고 그러니깐 어떤 모임인지 잘 모르시고 허락하셨죠. 그래서 보충수업 시간에 열심히 모였어요. 우리는 이 학생신앙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고요. 이 운동을 통해서 신실한 신앙 동지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sdg.png : 와....요즘 중고등학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열정 있고, 순수한 신앙 중심의 모임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거네요.


이 : 예. 고등학교 때 흩어진 뒤로는 주일날 오후에 모였어요. 다른 학교, 다른 교회를 다녔지만 주일 오후가 되면 함께 모여서 성경공부도 하고, 읽은 책을 함께 나누기도 했어요. 재미있는 모임이었죠.


sdg.png : 저의 아이도 중학생이지만 요즘에도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모임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당시의 학생들은 여러모로 참 성숙한 모습이었네요. 아무래도 교회의 영향이 컸던 것이겠지요?


이 : 그럼요. 당시 친구들과 만나면 일제시대의 민족을 위해 노력한 분들도 우리와 같은 나이 또래였는데, 의미 없게 시간을 보내서야 되겠는가 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곤 하였습니다.


sdg.png : 교수님 말씀을 들어 보니, 지금도 이런 학생신앙운동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또 개혁신앙 안에서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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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은 신학과를 지원하셨는지요?


이 : 아니요. 워낙엔 다른 공부를 먼저 하고, 신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공부를 잘 못했는지 여러번 떨어졌어요.(웃음) 결국 우여곡절 끝에 총신대 기독교 교육과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게 저에게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지금은 좀 다른데, 당시 기독교 교육학에서는 신학과에서 배우는 것을 거의 다 배우면서 교육학도 가르쳐 줬어요. 좋은 신학의 기초도 알려주고, 거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를 생각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해주었던 거죠.


sdg.png : 많은 분들이 교수님에게 가르치는 은사가 특별하다고들 하는데, 아마 그 때 교육학을 공부하셔서 그러신가 봅니다.


이 : 그랬을 수도 있고요. 글쎄. 그건 잘 모르겠어요.(웃음)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인지 아무래도 신경을 써야하겠죠.


sdg.png : 대학을 들어가시고 나서도 개혁신앙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지셨나요?


이 : 그게 더 강해진 거죠. 철저하게 개혁신학을 공부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공부하다보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우리에게도 개혁신학이 있구나. 그렇지만 그것에 철저한 교회는 드물구나 라고 말입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도 개혁신학에 철저한 교회는 아니었고요. 여기서 사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죠. 우리에게는 서구에서 받은 개혁신학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여기에 충실한 교회를 만들 것인가가 과제였던 겁니다.


sdg.png : 그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는 과정에서 일반인이 겪는 인간적인 회의, 방황 같은 것은 있으셨나요?


이 : 적은 셈이었죠.


sdg.png : 부모님 속도 안 썩히셨겠군요?(웃음)


이 : 아뇨. 대학교에 떨어지고 그러니깐 썩으셨겠죠.(웃음) 하지만 개혁신앙을 다른 사람들과 잘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까, 이 신앙으로 사람들이 제대로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관심이 더 많았죠.


sdg.png : 교수님께서 대학에 다니실 때는 한국사에서 격동의 시대였는데, 그 당시에 신학을 공부하는 젊은 청년으로서 사회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이 : 우리로서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죠. 어떤 분들은 사회참여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는데, 개혁신앙 안에 있으면 고민거리가 아닌 거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책임 있는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방식은 아닐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죠. 가끔가다 보수적인 교회의 성도들은 사회에 무관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나는데, 우리는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분들을 설득하는 거죠. 개혁신앙은 사회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고, 그런 식의 민주화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늘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사회가 제대로 나갈 것인가 생각을 해야 하는 거죠. 자연스럽게, 제대로 (사회참여를) 표현하는 길이 무엇이냐, 그것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였지요.


sdg.png : 개혁신학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사회에 대하여) 폐쇄적이고 도피적,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개혁신학은 사회에 대한 강력한 책임 의식과 도전정신을 요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땅한 모델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교수님께서 청년으로서 활동하던 그 시대의 기독 청년들은 그러한 정신이 투철했던 같습니다.


이 : 우리가 어려서부터 카이퍼를 읽었으니깐 그것이 모델이었죠. 카이퍼의 문제점을 의식한 것은 나중이었고, 오히려 카이퍼가 적극적으로 사회에서 활동했던 예가 있으니깐, 개혁신학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적인 예로서 우리 가운데 있었던 거죠. 물론 한국 사회속에서 그러한 예를 실질적으로 경험한 교회는 거의 없어요. 그러나 개혁주의 역사 속에서 그러한 예를 우리가 아니까 우리가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어도 개혁신학은 이런 것이다 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죠. 사람들이 보수적인 교회는 사회에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sdg.png : 대학시절부터 교수님께서 신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책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시게 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총신대학교를 나오시고 합신대학원을 졸업하신 후에 유학을 가신 걸로 아는데, 그 과정에서 신학자가 되리라는 포부를 가지신 건지요?


이 : 아뇨. 전혀 아니에요.(웃음) 합신을 가게 된 것은 우리의 선생님들이 모두 총신을 나오셔서 합신을 가셨기 때문에, 당시 의식 있는 사람들은 다 합신을 간 겁니다. 우리 친구들 가운에 못 왔던 사람은 두 부류인데, 한 부류는 오고는 싶은데 부모님이 합동측의 요직에 있어서(웃음) 못 오던 사람들이 있었고,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군목이었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군목 중에 몇 분은 군목을 포기하고 병으로 가신 분도 있어요.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합신으로 오게 된 것이죠. 이렇게 대학교의 생활이 신대원의 생활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어요. 신대원에 와서 더 강조된 것은 어떻게 하면 성경주해적인 근거를 더 분명히 하는가, 이것이 문제였어요. 성경주해적인 근거를 튼튼히 하는 게 신대원에서 중요한 일인 거죠. 또 저는 가난해서 유학을 갈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어요. 제가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갔는데, 이곳을 졸업하면 군대를 가는 대신 석사 장교 과정을 밟을 수 있었어요. 그것을 이용하려고 갔었는데 대학원을 졸업할 때쯤 그것이 안 된다는 거에요. 그런데 병무청에 있는 분이 하는 말이 대신 유학을 다녀오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학을 가기로 84년도 3월 1일날 결정을 했어요. 군대를 가나 유학을 가나 홀로 계신 어머님과 떨어지긴 매 한가지인데, 그래도 석사 장교는 복무를 일찍 끝낼 수 있으니까 유학을 결정한 것이죠. 이 곳 저 곳에 apply(지원)을 했는데, 유학가신 분들이 다 그러시겠지만 이 apply를 하고 기다리는 기간이 재미있는 기간입니다.(웃음) 미국의 세인트 앤드류스에서 제일 먼저 입학 허가가 왔어요. 하지만 그 당시에 미국은 입학 허가가 나도 비자가 안 나오던 시절이라 결국은 영국으로 갔어요. 이것이 결국 잘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갔던 곳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본산인 곳인데, 물론 신학은 전혀 다른 곳이지만, 그 곳에 가서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개혁신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의미가 있었던 거죠. 물론 그런 의도를 가지고 간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처음엔 어떤 정리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과정 가운데서 구체적인 주제를 가지고 논의할 수 있었고, 석사 논문은 칼 바르트의 계시론과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키에르케고르의 계시론을 비교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굉장히 의미있는 작업이었죠. 즉 키에르케고르를 이용해서 칼 바르트를 비판하는 작업을 한 겁니다.


sdg.png :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게 사실 그런 것이 아니다 라는 말씀을 하신거군요.


이 : 예. 그 얘기를 한거죠. 그리고 그것은 학문적으로 논증 가능하니깐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바르트가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바르트는 자신이 처음에는 키에르케고르에게서 영향을 받았었는데 나중에는 다른 데로 갔다고 말하지만, 다른 데로 갔다고 말하는 그것이 오히려 진짜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려고 하던 바와 비슷하고, 정통적인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이 제 논문의 내용입니다. 제가 유학가기 전에 코넬리우스 반틸의 ‘개혁신앙과 현대사상’을 번역했었는데, 역자의 말을 쓰면서 반틸이 한 말을 반복하지 말고, 원작자가 한 말을 읽고 비판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었어요. 그래서 사실 저한테는 석사과정이 칼 바르트를 진짜로 읽고 비판한 좋은 작업이었죠.


sdg.png : 그 작업을 영국에서 하신건가요?


이 : 네. 그렇게 석사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6개월 동안 석사 장교를 마쳤어요. 그리고 다시 영국에 돌아갔는데, 왜냐하면 이왕 공부를 하기 시작했으니깐 박사과정을 한거죠.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돈이 없는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느냐 하면 일단 research studentship이 나왔어요. 그리고 당시 제가 섬겼던 교회에서 연결해 주셔서 횃불회관에서 장학금이 주어져서 감사하게도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거죠.


sdg.png : 연구 주제는 바르트와 키에르케고르의 신학적 관계를 해명하신 건데, 한편으론 영국에 가셔서 정통 장로교회의 역사적인 흐름과 내용을 보실 기회가 있으셨는지요?


이 : 박사과정을 하면서는 논문에 집중해야 했어요. 지도교수님이 바르트보다 키에르케고르를 더 잘 안다고 하셔서 키에르케고르만 가지고 논문을 쓰는데, 날마다 그것만 하니까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되어져서 하루 또는 한 나절을 시간 내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연구하는 일도 했죠. 그것이 좋은 토대가 되었어요. 사실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을 돌아보기만 해도 역사 교육이 됩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어떻게 갔는지를 볼 수 있으니까요. 거기다 시간을 내서 역사와 신학을 봐야 하는데, 그것만 할 수 있는 시간은 없고, 논문을 쓰면서 그 일을 위하여 한 나절 정도는 냈을 거에요. 논문을 마친 뒤에는 본격적으로 자세히 볼 수 있었죠.


sdg.png : 참 좋은 기회셨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이 : 대학에는 모든 자료들이 거의 다 있고, 필요하면 다른 대학, 심지어 미국에 있는 자료도 interlibrary로 하면 빌려주거든요. 그 interlibrary를 담당하는 사서는 저 때문에 귀찮았을 거에요.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거든요. 


sdg.png :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 : 저는 가난한 사람이니깐 유학 갈 생각을 전혀 못 했었죠. 공부하면서도 신학자나 신학교수 생각은 못하고, 가서 목회를 잘 할 수 있으면 생각하고 온 겁니다. 귀국했을 때도 상황은 쉽지 않았고 말이죠.


sdg.png : 키에르케고르가 석사와 박사과정 논문의 주제이신데요. 일반적으로 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키에르케고르는 철학자라고 생각을 하지 신학자로 생각을 안 합니다. 키에르케고르에게서 (우리와 연결된) 개혁신학의 끈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있었건 것인지요?


이 : 네. 키에르케고르는 철저한 루터파 사람이고, 신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이 분이 철학으로 유명해진 것은 이 분의 생각의 폭이 넓었던거죠. 졸업을 안하고 대학생활을 오래 하였는데, 그러다보니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게 됐고, 문학, 철학, 예술등 모든 것과 접축하면서 관련하는 작업을 한거죠. 그러면서 유럽 사회 전체를 뒤바꿔놓을 만한 생각을 펼쳐 나간 것이죠. 독특한 생각이었어요. 우리와 어떻게 연결이 되냐하면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이 분의 궁극적 목적은 어떻게 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신실한 루터파적 전통에서 나온 것인데, 루터보다도 더 성경적이려고 하는 부분이 있었던 거죠. 이 부분이 칼빈과 연결될 수 있는 거고요. 그 분은 칼빈이 나타내는 신학, 즉 우리가 말하는 칼빈의 언약신학을 비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연관성이 있는거죠. 그것은 현대 신학에 나타나는 모든 사상들과 대립되요. 아주 의미 있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현대 신학의 선구자라고 생각되어지는 키에르케고르가 오히려 현대 신학을 비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선구자의 역할을 하는 거죠.


sdg.png : 키에르케고르는 루터주의자이지만 그를 통해서 역사적 개혁주의를 볼 수 있고, 현대 교회를 비판할 수 있는 면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매력적입니다.


이 : 자세히 보면은요. 자세히 안 보면 모르고요.


sdg.png : 저희 대학 때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주의 철학자 정도로 한 번 얘기하고 넘어갔는데 신선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학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에 많은 분들이 개혁신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서 계획도 세우고, 유학도 가는데, 교수님께서 보실 때 개혁신학에 대한 연구 목적을 위해서 공부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 :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개혁신학에 대해서 철저히 오리엔테이션이 되어 있으면 신학이 다른 곳에 가셔도 상관이 없어요. 그것 때문에 신학이 변화하지 않는거죠. 예를 들어서 저랑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 가서 공부하신 분들이 있어요. 뮌스터에서 공부하신 조병수 교수님이 대표적인데요. 뮌스터에 있던 몇몇 분들이 개혁신학에 철저하려고 노력을 하셨어요. 그분들이 얼마나 철저하던지 모여서 새벽기도회도 하고, 개척해서 목회도 하셨는데, 그분들은 혹시 이렇게 하다가 독일의 분위기상 학위를 못 딸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일을 지속하겠다 결심했죠. 그러니까 이런 분들은 독일에 가서 신학이 변한 분들이 아니죠. 이런 분들은 어디든 가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면 Th.M.(신학석사)은 개혁주의 입장에 철저한 보수적인 학교에서 하고, 그 뒤에 Ph.D.(신학박사)는 자유롭게 해도 좋다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 조언은 주께서 은혜를 주셔서 유학을 가는 것은 굉장히 큰 특혜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시간과 돈이 주어져야 갈 수 있기 때문이죠. 대개는 돈이 있어서 유학을 가는 사람들은 드물고, 남들이 도와줘서 특혜로 주어지는 것인데요. 그것이 자기가 생을 다 바쳐서 평생을 공부하는 일에 갈 사람들은 그 특혜를 사용하는 것이 좋고,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돈과 시간이 아깝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시길 권해드리고 싶어요. 다른 길을 찾는 게 좋습니다. 일단 하나님께서 특혜를 주셔서 가게 된 분들은 그 시간과 돈을 잘 활용하셔서 의미있게 하시되, 우리가 국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좋은 토대를 마련해 줄 생각을 해야 되요. 이전까지는 우리가 공부하고 나서 우리나라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제는 점점 해외에 나가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국제적인 활동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의미를 가져야 해요. 아직까지는 수월하게 되지 않았지만, 이를 위한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sdg.png :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개혁신앙을 말하고, 개혁신앙의 보편성을 말하지만 외국으로부터 받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적 신학의 입장을 소개하고 어떤 연결고리를 찾는다면 같이 보편적 신학을 강하게 연대해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교수님 말씀처럼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사명과 물질과 시간이 주어져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꼭 학자의 길을 걸을 사람이 아닌 목회자의 경우에도 계속적인 공부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런 분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까요?

이 : 목회자의 경우에는 안식년이 주어지지 않습니까? 그 기간을 이용하는 것이 더 좋죠. 궁극적으로 목회를 할 것이라면 신학대를 졸업하자마자 유학을 가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평생 공부를 할 사람들은 유학을 가고, 목회자들은 소명에 따라서 힘쓰다가 기회가 주어지면 견문을 넓히는 거죠.


sdg.png : 소명에 따라서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이 : 네. 맞습니다. 목회자들은 소명에 따라서 힘쓰다가 기회가 주어지면 견문을 넓히는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시간과 돈이 아주 많이 쓰이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주를 위해서 해야 하기 때문이죠.


sdg.png : 그런면에서 교회적인 뒷받침과 성도님들의 관심과 이해가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인터뷰전에 교수님의 이력을 보고 싶어 구글에 성함을 검색해봤습니다. 제가 그동안 모르던 이력이 많으시더라구요. 한국에 오셔서도 몇 학교를 가셨습니다. 합신에 오신지는 2009년이까, 4년째이신데요. 합신에 오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이 : 몇몇 교수님들이 늘 관심을 가지고 오길 청하셨었죠. 몇 년 전에 저보다 나이는 많으시지만 5회 동기이신 조병수 교수님이 합신에 계셨는데, 저에게 합신에서 오라면 올 것이냐고 물어보셨어요. 합신은 모교이고, 함께 모여야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다 합쳐져서 4년 전 합신으로 왔어요. 하나님의 섭리 과정이 있어서 온 거죠. 합신의 정치는 한편으로는 독특하면서도 한편에서는 보편적이에요. 개혁신학을 철저히 하자는게  우리의 목표잖아요. 이게 굉장히 보편적인 거에요. 그런데 한국의 신학교들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게 굉장히 독특한 것이 되는 거에요. 제가 이전에 있던 학교들도 방향은 같았죠. 개혁신앙 중심으로요.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도 그렇고,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도 그렇게 이야길 했어요. 합신도 그렇게 이야길 하기 때문에 보편성이 있는 건데, 그 보편성이 독특성인 겁니다. 그런 점에서 박윤선 목사님의 강조점은 의미가 있어요. 박윤선 목사님이 옛날에 고신에서도 가르치셨고, 총신에서도 가르치셨지만, 특별히 합신에 오셔서 집중한 것이 교회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것도 개별 교회보다도, 이 교단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었죠. 그래서 합신이 세워지고 얼마 안돼서 헌법 주석이 나왔어요. 얇은 책인데요. 굉장히 의미가 있어요. 두 가지면에서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곳곳에 들어 있는 짧은 글들 속에서 굉장히 젊은 사고를 펼쳐가세요. 또 하나는 교회론 자체의 특성인데요. 박윤선 목사님이 강조한 것 중에 하나가 총회라고 하는 것은 개회와 동시에 시작돼서, 폐회됨과 동시에 파회된다는 걸 강조를 하신 거죠. 일종의 교권주의에 대한 반발인데, 용어도 총회의장, 교회의장이라고 바꿔놓으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정신은 유지하면서 다른 교단과의 협의를 위해서 용어는 외적으로(총회장으로) 한다고 고쳐놓은 거죠. 그 정신이 우리 속에서 살아있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박목사님이 했던 대로 가고, 다른 교단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쳐야 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박윤선 목사님은 개혁파 신학에 충실한 신학과 교회를 이루는 큰 기여를 하신 거죠. 단지 우리가 거기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고요. 여러면에서. 우리의 예배나 교회 관계와 같은 것들이 우리 선배들이 이루려고 했던 개혁신학에 충실한가하는 반성이 필요한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합신에 온 것이 전통을 제대로 계승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sdg.png : 대단히 공감이 되는 말씀입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우리 한국 교회의 정통 개혁교회의 지향점을 보여 주신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이 박윤선 목사님을 통해서 스코를랜드 장로교회 전통과 화란 개혁교회 전통을 잘 배합해서 한국에 소개하셨는데, 그 정신이 헌법에도 잘 조화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바라고 있는 일들을 선구적으로 이루셨고, 그 일을 계승해 가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이승구 교수님게서 합신에서 교직 생활을 계속하셔서 박윤선 목사님처럼 끝까지 하셨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이 : 사람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늘 그걸 바라는 거죠.(웃음) 그럴 수 있다면 학교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우리 교단에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 교회에도 합신이 있는 의미를 드러낼 수 있고요.


sdg.png : 박윤선 목사님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하셨던 일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을 마무리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알기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7년판을 받는 교단이 한국에 합신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 그것을 너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교단들도 같은 정신으로 가는 것이고, 미국에서 영국과 달리 통치자들이 교회에 간섭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놓은 것을 배제한 1789년 판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를 잘 살린다면 괜찮은 거죠.


sdg.png : 네.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합신 교단이 나아가야 할 신학적 정체성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담긴 정통 장로교의 정체성이라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영향력 있는 장로교회들이 이런 내용에 있어서 부족한 면을 보이지 않나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한 가지 나누고 싶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터넷을 살펴보니깐 교수님께서 작년에 ‘목회와 신학’ 잡지에서 여러 분들이 추천한 명강사 중에 최다 득표를 받으신 적이 있던데요. 이것이 왜 흥미로운가 하면, 교수님의 신학적 지향점은 개혁신학인데, 초교파적인 일반 성도들을 대상으로한 설문에서 최다 득표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왜냐하면 개혁신학이 엄밀성도 추구해야 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전파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신학적으로 엄밀하게 가야하는 부분과 한국교회 전반에 펼치기 위한 부분이 어떻게 서로 연관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 두 가지 일을 우리가 다 해야겠죠. 둘 다를 한다는 건 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상황에서는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이죠. 넓게 펼치는 일은 주로 목사님들이 많이 하셔야해요. 신학교 교육의 목적은 온 세상에 펼쳐져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가르침을 받도록 하는 겁니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거의 없긴 없습니다만.(웃음) (신학교)학우들이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데, 일부는 미리 개혁신학을 충실히 배워와서, 신학교에서 좀 더 세련되게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은 다양한 사상들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3년의 기간이 치열한 전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업시간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개혁신학이 이야기하는 것이 다른데,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거죠. 그 고민이 없는 사람들은 신학 공부를 하는게 아니에요. 이렇게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졸업해서 개혁신학의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해야겠죠. 즉 대중 전체에게 하는 역할은 목사님들이 해야 할 일이고, 그것을 위해 신학교 교수님들이 철저히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야하는 겁니다. 몇몇 은사가 있는 교수님들은 동시에 대중화 작업도 앞장서서 한다면 목사님들이 더 도움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SDG 연구회가 이러한 작업을 할 때 저같은 사람이 옆에서 같이 있다면, 더 도움이 되는 거죠. 목사님들만 이 일을 다 하고, 교수들은 안 한다면 별로 의미가 없어요.


sdg.png : (이승구)교수님 같은 분들은 원석을 캐시는 분들이고, 저희는 잘 가공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해가 잘 될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그런(대중화) 목적으로 소망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들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 제가 하는 활동 중에 제일 중요한 활동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한국성경신학회. 그 일은 거의 모이는 분들이 게할더스 보스의 입장에서 하는 성경신학 중심으로 갑니다. 개혁신학적 성경신학이죠. 김성봉 교수님이나 저 같은 조직신학 하는 분들, 또 역사신학 하는 분들, 신구약 공부하시는 분들이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우리의 사상을 넓게 펼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집중해서 관심을 가지고 하는 활동이죠. 그리고 그 외에 나머지 활동들은 폭이 좀 넓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도 접촉을 해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복음주의신학회 활동은 개혁신학자들만이 아니라 알미니안도 있고, 순복음교회 사람도 있고, 다양하게 있어요. 우리의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지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런 접촉도 있어야 하고, 또 신학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사람들과도 같이 논의하는 장이 있어야 해요. 한국장로교신학회와 같은 활동이 대표적이죠. 거기에는 한신 교수님들도 있고 그럽니다. 성도들이 굳이 그런 모임에 올 필요는 없어요. 성경신학회에서 하는 작업에는 성도들도 같이 참여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성경신학회의 방향이 우리가 가는 방향이니까요. 그러나 신학자들은 이렇게 전혀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토론도 하고, 서로 얼마나 다른 가를 확인하기도 하면서, 서로에게 자극도 주는 작업을 해야 하는 거죠. 이렇게 두 종류의 서로 다른 활동을 제가 하고 있습니다.


sdg.png : 그런 활동들을 다 하시려면 시간이나 건강이나 채력들을 잘 분배하지 않으시면 쉽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이 : 자칫 잘못하면 일에 치여살 수 있겠죠.


sdg.png : 이 많은 활동들을 왕성하게 하시는 노하우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 : 하나 좋은 방법은요.(웃음) 성경신학회 일 아니고는 다른 사람들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에요. 그분들이 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 주는 역할은 별로 힘이 안 드는 거죠. 성경신학회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주로 관여해서 발제도 해야 하니까 그렇게 못하지만요.


sdg.png : 앞으로 후배 혹은 관심 있는 분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일들에 대해서 교수님 개인적으로 성과나 기대감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어떻습니까?


이 : 그냥 만족스럽진 않죠.(웃음) 많이 하니까 제대로 하지도 못하구요.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죠. 안타까운 것은 개혁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하는 모임에 사람들이 집중하는 열도가 부족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신학교 학생들이 내가 여기서 개혁신학을 배워야지, 여기 아니면 안된다는 절실성이 있어야 하는데, 안 그런 사람이 많아요. 어느 학교든지. 그(절실성을 가진 학생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서 그 학교가 정말 살아있는지 아닌지가 결정이 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이 다양한 교파에 속해 있었더라도 성경을 조금이라도 사랑하게 되면 진리를 찾아 헤매이게 되죠. 그러다 개혁신학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이거 아니면 안된다는 절실성들이 많이 나타나야 되는데,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은 아닌 거죠. 한편으론 SDG를 열심히 보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긴 한데, 또 다른 면에서 보면 그렇지가 않아요. 관심을 기울이긴 하는데 절대적이진 않은 거죠.


sdg.png : 교수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제 의견을 덧붙이면 상대적으로 가르치는 자리에 있거나 교역자 자리에 있는 분들이 일반 성도님들보다 더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조십스럽게 하게 됩니다. 신학교를 나와서 그런 생각을 하려고 하면, 이미 현장 논리 때문에 어려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신학교에서부터 얼마나 엄밀하고 집중력있게 개혁신학을 가르치느냐, 또 교수님 한분이 아니고 여러분이 함께 뜻을 모아서 필터링을 해주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 일에 있어서도 (이승구)교수님이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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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교수님을 생각할 때 많은 분들이 언약교회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언약교회의 설립 과정과 언약교회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개혁교회의 모습 등을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 언약교회는 뭐 그렇게 의도적으로 형성된 교회는 아니고요. 어떻게 하다가 생긴 교회지요.(웃음) 하나님의 은혜로 생긴 교회에요. 제가 답십리에 있는 호산교회를 귀국하면서부터 섬겼었어요. 담임목사님셨던 이광길 목사님이 유학 때문에 나가시게 돼서 섬기게 되었는데, 교회를 섬기면서 동시에 학교 강의도 하다보니까 간염에 걸리게 되었어요. 신학교는 계속 해야하니까, 교회를 사임하게 됐죠. 교회를 그만 두고 나니 당장 주일 낮 예배가 문제가 되었어요. 어디 갈 데가 없으니깐, 집근처의 예배당을 출석하는 거죠. 그런데 저녁 예배를 안 드리더라구요. 당시에 교회를 섬기지 못하는 신학생들이 있었는데, 하루는 광고를 해서 제 연구실에서 주일 저녁에 성경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몇몇 사람들이 6개월 정도를 했는데, 주일 아침에도 그냥 모이면 어떻겠냐고(SDG: 그 자리에서 학생 신앙 운동이 일어났네요.) 그래서 그냥 한거죠. 학교 담당자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인데, 제 연구실이 도서실과 붙어 있어서 나중에는 그냥 도서실에서(웃음) 허락도 안 받고 모이기도 하고, 학교 강당 비슷한 곳에서 모이기도 하고 그랬어요. 상당히 모였죠. 30명, 40명. 주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모이시는지 하는 물음을 가지면서.


sdg.png : 신학생들이 그렇게 모인건가요?


이 : 예. 처음엔 주로 신학생들이었죠. 그리고 나중에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오기도 했어요. 당시 신도들 가운데 한 신학생이 김포의 한 건물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본격적으로 개척을 해주길 요청했죠. 그래서 당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있던 세 분 교수님과 같이 가서 사약을 하게 됐어요. 많이 모일 때는 7,80명도 모이고 그랬죠. 그렇게 사역을 하다가 그 일을 주도했던 분이 뭐가 좀 잘 안돼서 다시 봉천동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강당으로 오게 되었어요. 그 때 김포로 가면서 교회 이름을 짓게 되었는데, 우리 교수님 중 한분이 언약을 강조하는 분이 계셔서 제가 그러면 언약교회 어떠냐 해서 자연스럽게 언약교회란 이름이 그 때 시작되었죠. 김포언약교회가 있다가, 봉천동으로 왔으니깐 그냥 언약교회가 된 거죠. 그러다 굉장히 어려운 때가 있었어요. (웨스트민스터)학교 강당에서 우리가 모였는데, 학교가 신축을 하면서 저희가 당시로서는 큰 돈인 3천만원을 담보로 잡혔는데, 그게 잘 안돼서 3천만원은 학교에 주고, 우리는 다시 이곳 저곳을 전전하게 됐죠. 한동안은 저희 집에서도 잠깐 모이다가, 봉천동에 있는 기윤실 사무실을 빌려서 모이다가, 어떤 건물 2층에서 모이기도 하고, 인덕원으로도 가고 그랬어요. 인덕원에서 3, 4년 전에 현재 언약교회가 있는 상일동으로 왔는데, 상당히 많은 성도분들이 같이 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늘 표현하듯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서 세워진 교회인 거죠. 누가 의도적으로 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없어질 수도 있었는데 지속되었던 거죠.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요. 하나는 개혁신학에 정말 충실한 교회이고, 또 하나는 신학생들이 섬기다 쉬는 때에 와서 있을 수 있는 교회에요. 개혁신학에 충실한 교회가 되는 게 하나의 목표이고, 또 하나는 신학생들이 언제라도 사역하다가 쉬게 되었을 때 와서 같이 예배드리고 영적인 공급도 받고, 가르침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목표인 거죠. 아직은  연약한 교회에요, 당회도 없으니깐 미조직 교회이고요. 이번에 처음 집사님을 선출하게 되는데, 여태까지는 봉사위원들만 뽑아서 그 분들이 회계관리도 하고 했었어요.


sdg.png : 와...뜻 깊은 일이시네요. 교회가 설립된 건 굉장히 오래되었군요.


이 : 오래되었죠. 94년도서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한 건 95년도부터 인데, 굉장히 오래된 거죠. 그런데 뭐 잘 못한 거죠.(웃음)


sdg.png :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언약교회에서 뵌 성도님들이 다들 안정된 모습이어서 그동안 교회도 안정되게 왔었구나 생각했었는데 그런 인도하심이 있었군요.

 현재 교수님께서는 여러 사역을 하시는데요. 교수 사역과 설교 사역과 저술 사역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사역을 꼽으라면 무엇인가요?


이 : 일단 목사로서 설교하고 목회하는 일이죠. 목회는 잘 못하긴 해요. 왜냐하면 주로 학교에 와 있으니까요. 목회는 우리 담임 목사님인 최현진 목사님이 주로 하시고요. 저는 이제 설교만 하는 거죠. 가짜 목사일 수도 있죠.(웃음).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하면 그게 은혜가 된다고 생각해요. 신학교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구요. 목회를 도맡아 해주시는 분이 있고, 설교 사역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신학을 가르치는 일에도 도움이 될 수 있고, 개혁신학에 충실한 교회를 만드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일 아침에 요한복음 설교를 하고 있는데, 요한복음을 끝내고 나면, 나머지 복음서 빼고는, 신약 전체를 다 한번 설교한 게 돼요. 구약은 다른 신약들과 같이 간혹 되어진 게 있고, 수요일 날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출애굽기를 하고 있어요. 주일 오후에는 여러 가지를 하는 데, 요즘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따라서 그 내용을 공부해 나가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요. 중요한 사역이죠.


sdg.png : 교사인 동시에 목사로서의 사역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시는 거군요. 외국 신학교에서도 교수님들이 설교사역을 하시는 데, 그런 영향력들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개혁신앙의 정신으로 교회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권면을 하신다면 무엇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 우리 성도들하고 늘 얘기하는 건데요. 교회는 그냥 같이 사는거니깐(웃음). 죽으나 사나 같이 사는 거니깐. 그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몇 명이 안 될 수도 있거든요. 몇 명 안 되는 사람하고도 같이 수십 년을 산다. 그걸 견딜 마음. 나는 그것은 관심 없고, 이렇게 해서 나중에 어떻게 될 거야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게 재미없어지는 거죠. 성도들도 저는 똑같은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성도들도 자꾸 그런 것에 오리엔테이션 되어 있거든요. 교회에 문제가 있으면 잘 못 견디는 거죠. 어떤 사람이 진짜 성도냐 하면 무슨 문제가 있든지 끝까지 같이 사는 사람. 그게 우리가 할 일이죠. 개혁신학이 지향하는 것도 그거 거든요. 우리가 믿는 바를 살아내는 것. 교회의 구체적인 장 속에 그냥 사는 거죠. 그런 마음만 있으면. 몇 명 안 되는 사람만 시작해서 우리가 끝까지 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가는 거다. 그러면 주께서 또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어떻게 하실 수도 있는 거고, 그 마음이 제일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sdg.png : 중요한 말씀이십니다. 신학과 신뢰가 한데 마음을 동여야 교회가 갖춰지고,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가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목회자나 성도들이 꿈이 다른 데 있어서 각자 자신들의 꿈을 이루는 데 목적을 삼는다면 교회가 제대로 갈 수 없을 겁니다.


이 : 지금 예를 들어서 개혁신학을 모토로 많이들 내거는데, 그걸 모토로 하면 모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거든요. 이것을 또 성장의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이상해집니다.


sdg.png :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이제 몇 가지 개인적인 질문을 더 하려고 합니다. 혹시 교수님께서 지금까지 저술하신 책이 몇 권인지 아시나요?


이 : 17권 있었어요.


sdg.png : 네. 맞습니다. 번역서는 27권, 그 외에 공저하신 책도 많으신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교수님이 쓰신 책을 보니깐 다양합니다. 개혁신학적인 내용도 있고,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내용도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 중에 성경을 제외하고 누구에게나 추천하시고 싶은 책이 있으시다면, 한 3권정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쓰신 책 중에서나 다른 책 중에서, 이 책은 반드시 소개를 해야 한다는 책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 여러 번 이야기 했었는데요. 첫 번째는 칼빈의 강요와 주석들입니다. 이 주석들이 흥미롭습니다. 저는 학생들한테 늘 설교 준비를 다 해놓고, 맨 나중에 해당 본문의 칼빈 주석을 읽어보라고 하는데요.


sdg.png : 아. 설교 준비를 할 때가 아니고 말인가요?


이 : 네. 준비 다 해놓고. 왜냐하면 이게 재미있어서 그래요.(웃음) 다른 주석과는 달리 중요한 목회적이고 교회적인 함의를 얘기해요. 다른 주석들은 거의 없는데, 그래서 그게 매우 의미있는 거에요.


sdg.png : 하지만 어떤 분들은 그 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 : 단순히 그렇지가 않아요. 물론 칼빈은 그 시대를 생각하면서 하는 거죠. 그런데도 굉장히 구체적인 목회적 함의가 본문 속에 있어요. 독특하게. 그러니까 그게 참 재미있는 거죠. 그래서 그런 것을 설교 준비가 끝나고 보면,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해 준비한 다음에 내가 이런 걸 놓쳤구나 하는 걸 배울 수 있는 거죠. 그 작업이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는 거죠. 칼빈의 강요는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에 억지로 읽히는데, 이게 정말 잘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에 토대해서 목회하면서 계속 주석을 읽어나가면 칼빈 사상에 충실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거죠. 

 칼빈을 좋아하는 분이 게할더스 보스입니다. 게할더스 보스의 성경신학. 이 책이 두 번째로 제가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인데. 제가 번역해서 그런 게 아니고(웃음), 이 책 자체가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가 (이 책을 통해) 특별계시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딱 뜨게 되면, 성경 전체를 잘 해석할 수 있는 틀이 형성되죠. 보스의 시각을 가지고 보면, 칼빈은 성경을 flat(평면적으로)하게 읽어요. 사실 보스의 그런 시각이 칼빈한테서 배운 것이거든요. 배워서 그것을 더 구체화한 거에요. 더 발전시킨 거죠. 신학의 발전이란 것을 여기서 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보스도 미처 얘기 안 한 부분이 많아요. 그냥 스케치만 해놓은 거죠. 그게 이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해야하는 거죠. 팔머 로벗슨이 조금 배웠어요. 그런 작업을 더 깊이 있게 해나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그게 잘 안되었어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나라 저자인데요. 박윤선 목사님. 특별히 헌법주석. 그건 정말 의미가 있어요. 얇은 책인데요. 이건 제가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당시 박윤선 목사님이 누구를 만나든지 늘 하시는 질문이 교회가 어떻게 되어야 하나고 물으셨다고 해요. 그 분의 그러한 관심사와 고민이 묻어 있는 책이에요. 딱 봤을 때는 전혀 그렇게 안 느껴져요. 상투적인 책처럼 보이죠. 진술을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의미 있는 기여가 있는 거죠. 한국에서 박윤선 목사님이 합신을 만들면서 한 그 기여, 그게 최후의 기여인데, 그정신이 드러나 있는 거죠.


sdg.png :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박윤선 목사님의 헌법주석에는 한국적 개혁주의나 개혁교회의 독특성 내지 보편성이 담겨 있다는 말씀이군요.


이 : 오히려 보편성이죠. 한국적인거 보다는. 왜냐하면 끊임없이 화란 개혁파에서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를 그 분도 궁금해 하면서 배워 가신 거죠. 


sdg.png : 그런 가르침에만 우리가 충실하더라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굉장히 귀한 것을 받고 있으면서도 적용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것 같습니다. 소개해주신 세 분은 꼭 기억을 하겠습니다. 혹시 교수님의 저술 중에 추천하시고 싶으시거나 애착이 가는 책이 있으신가요?


이 : 신학하시는 분들은 별로 안 보는 책인데요. ‘21세기 개혁신학의 방향‘. 그 책을 보면 여러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죠. 이게 개혁신학 시리즈인데요. 처음에 ‘개혁신학에의 한 탐구‘라는 책이 나왔어요. 그 다음에 나온 ’전환기의 개혁신학‘이 20세기의 개혁신학을 잘 정리한 책이죠. 그것에 토대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냐와 관련하여 그 당시 활동하던 몇 몇 사람들 중심으로 쓴 책인데, 그 책(’21세기 개혁신학의 방향‘)을 잘 보면 신학생들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거에요. 정말 봐야 될 책입니다. 일반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를 보고, 그 다음에 ‘교회란 무엇인가’를 보시는 게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sdg.png : 교수님께서 신앙고백서를 해설하시는 데도 관심이 있지 않으십니까?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저술을 더 해야 하겠다 생각하시는 주제가 있으신지요.


이 :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3권이 마지막이고요. 기다리고 있는 게 벨직 신앙고백서 강해에요. 그거는 아직 아무도 우리나라에서 안 했기 때문에. 제가 조금 앞부분에 해 놓은 게 있어서 시간이 주어져 빨리 나올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많은 분들이 하셔서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sdg.png : 벨직 신앙고백서는 이렇다 할 강해서나 주석이 없는데 정말 기대됩니다.

 교수님께서 지금껏 많은 사역을 하셨지만, 하나님 곁에 가시기 전에 이것만큼은 꼭 이루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소망이 있으신가요?


이 : 조직신학자니까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만, 개혁파 조직신학을 하고 싶어요. 하지만 신학 저술로서 하는 게 주저도 많이 되긴 해요. 왜냐하면 일반 성도들하고는 거리가 먼 정치한 신학적 의미이니까요. 그러나 결국 신학자들은 나중에 제대로 할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하는 필요한 작업이죠. 그것을 쓰는 것이 소망입니다.


sdg.png : 굉장히 큰 작업일 것 같습니다. 개혁교의학이라든지 개혁조직신학은 한 신학자의 신학사상뿐 아니라 시대의 신학에 대한 답변이 아니겠습니까? 대중성은 좀 떨어진다고 해도 신학적 지표를 세우고 보여주는 데 있어서는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 : 마이클 호튼이 저보다 젊거든요.


sdg.png : 아. 그렇습니까?


이 : 그 분은 그 작업도 해놨어요. 일반적인 책도 해놨고, 아주 깊이 있는 책도 해놓고. 호튼이 더 부지런하다는 거죠.(웃음) 그 분도 굉장히 다양한 사역을 많이 해요. 그래서 처음에 저는 그 분이 영국 가서 박사학위를 할 때, 그 분이 활동가이지 신학자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sdg.png : 그럼 영국에서 그 분을 직접 만나신건가요?


: 아뇨. 만나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들은 거죠. 저보다도 나중에 공부하셨을 텐데요. 그 지도 교수도 한편으론 전문적인 책을 쓰면서 한편으론 꾸준히 일반적인 책을 열심히 쓰는 맥그란트였죠. 맥그란트 밑에서 박사학위하신 게 잘 하신 것 같아요. 그 때까지만 해도 그 분이 저렇게 개혁신학의 대표적인 사람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그 작업을 아주 잘하고 있는 대단한 분이십니다. 데이비드 웰스의 경우에는 개혁신학에 충실한 작업은 거의 안하시고, 저는 웰스의 작업을 문화적 변증학이라고 얘기하는데, 그 작업은 너무 잘하셨어요. 그리고 복음주의를 진짜 복음주의로 만드는 작업을 하시죠. 물론 (사람들이) 웰스의 말을 안 들으니깐 안되지만. 그리고 그것이(진짜 복음주의) 개혁파 정통주의다 하는 것을 웰스의 말을 제대로 듣고 나면 되는 거거든요. 그것을 너무 잘해주신 거죠. 더불어 개혁파 정통주의를 오늘날 새롭게 제시하는 일을 웰스가 해주셨어야 하는데, 기독론만 쓰셨어요. 그런데 그것에 해당하는 작업을 호튼이 하고 있어요. 이 분이 정말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개혁신학자이죠. 그러니까 제가 암만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호튼보다도 더 게으른거죠.


sdg.png : 호튼은 미국사람이고, 교수님은 한국사람이시니 그렇게 비교하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웃음) 저도 좋아하는 신학자를 교수님께서 좋게 평가해주시니 더 좋습니다.

 요 근래에 예전보다 개혁주의, 개혁파, 개혁교회란 말이 많이 흔해지고, 또 인터넷이 발전해서 이런 공유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디서든 개혁주의 모임에 많은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망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론 깊이나 내용면에서 아쉬운 면들이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 보시기엔 어떠신지요?


이 : 지금 현재는 분산되어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죠. 이렇게 계속 가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sdg.png : 그러니까 개혁주의를 추구하면서도 각자 소견이 다르단 말씀이신가요?


이 : 그럴 수도 있고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혁주의가 너무 좁으면 안 돼요. 전통적인 의미의 개혁파 정통주의가 우리가 말하는 개혁주의여야 되지, 그거를 더 좁혀 놓고, 이것이 개혁주의이고 나머진 아니다라고 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개혁주의 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되냐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개혁주의이긴 한데 좀 이상한 개혁주의가 되는 거죠. 대개 그래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서로) 아무 얘기도 못합니다. 일종의 분파주의 운동이 되는 거죠. 그렇지 않으려면 우리의 개혁주의는 개혁파 정통주의라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런 사람들끼리의 느슨한 연합이 필요합니다.


sdg.png : 느슨한 연합이라는 표현이 의미있게 들리는데요.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 : 왜냐하면 이게 일종의 운동이기 때문이죠. 교단이 아니고. 어떤 사람들은 교단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돼요. 느슨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 그런 연합이 있어야 하죠. 그래서 개혁파 성도와 교회들끼리 하나의 공동체라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있어야 하는 겁니다. 데이비드 웰스의 작업이 그것인데요. 다른 복음주자들에게 너희는 우리와 다르다고 할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 사람들을 진정한 복음주의가 되게 하는 거에요. 옛날 복음주의 전통에서 떠났다 이겁니다. 복음주의 신학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개혁파 정통주의죠.(웃음)


sdg.png : 결국 대안이 개혁파 정통주의라는 말씀인가요?


이 : 예. 리차드 린츠도 그렇게 했고, 요나단 에드워즈하고, 게할더스 보스를 제시하는 거죠. 그게 우리의 갈 길이죠. 근데 다만 개혁주의라는 낱말을 사용하지 않고, 복음주의라고 하는 것 뿐이지요. 

 이제 두 번째 우리가 해야할 일은 수 많은 복음주의자들을 우리가 이끌어 가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연합하는 길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속에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요. 그렇지 아니하고 우리끼리만 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죠. 이걸 하면서 교회가 든든하게 서 나가야 합니다. 각각의 교회가 개혁파 교회임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우리가 꼭 이름을 개혁파 교회라고 할 필요가 없는 거에요. 사실 언약교회 성도들도 우리가 개혁파라는 의식이 별로 없어요. 그냥 성경에 충실한 거죠. 그게 좋은 거죠.


sdg.png : 즉 성경에 충실한 교회가 곧 개혁파 교회가 되는 거군요.


이 : 개혁파 교회란 말을 안 써도 그렇게 되어지는 거죠. 성경에 충실한 장로교회. 그러면 더 좋죠. 다른 교파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장로교회)보다는 성경에 충실한 교회가 더 좋지만, 일단은 그래도 개혁파 장로교회의 특성을 지니는 게 중요하죠.


sdg.png : 느슨한 연합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어떤 면에서는 신학이 실종된 의미에서의 연합을 추구하거나, 자신들의 신학을 독단적으로 강조하는 분파주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양편은 지양해야 될 방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칼빈도 로마 카톨릭과 재새례파를 염두해서 기독교 강요를 쓸 수밖에 없었듯이 말입니다. 중요한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SDG 개혁신앙연구회와 관련해서 두 가지 질문만 드리려고 합니다. 

 SDG 개혁신앙연구회와 같이 인터넷이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서 개혁신앙의 나눔을 갖는, 물론 저희는 오프라인 사역을 병행하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모임에 대해 교수님이 갖고 계신 기대 혹은 우려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 감사한 일이죠. 왜냐하면 시대 속에서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거죠. 17세기나 18세기의 개혁주의자들은 그런 환경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18세기의 복음주자들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 시대에서는 최선의 방법을 모두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환경을 이용해서 바른 사상을 널리 알리고, 그런 사람이 연합하는 건 좋은 거죠. 그런데 인터넷 환경은 늘 그렇지만 책임이 없어질 위험성이 있죠. 우리가 동의하는 그것에 책임을 지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지만 이것 자체가 의미가 있고, 활성화되어질 수 있어요. 우려가 되는 건 나중에 이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요. 교회도 출석 안하고, 나는 개혁파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의도하는 게 전혀 아니거든요. 그러한 모임은 교회를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다만 성도들의 넓은 의미의 느슨한 연합을 위해 좋은 기여를 해주는 거죠.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좋은 거죠. 우리 회원님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에서 정말 충실한 성도, 교회아로서의 의식을 잘 갖추고 있어야 하는 거죠.


sdg.png : 인터넷 공간이라 할지라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나 모임을 활성화시킬 목적보다는 신앙고백적 관심과 공동의식을 가지고 그런 수단을 통하여 각자 속한 교회에서 개혁 정신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동감합니다. 그것은 또한 저희 SDG 개혁신앙연구회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합니다.(웃음)

 이제 마지막으로 SDG 회원분들과 개혁신앙을 추구하는 우리 시대의 많은 성도님들께 위로와 권면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 아까 나왔던 말인데요. 세 가지로 요약하면. 우리를 분파적이거나 고립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개혁신학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일부분만 알고 이것이 전부다라고 해선 절대로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17세기 개혁신학에 충실한 사람들은 다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게 다 어디서 나온 거냐면 성경에서 나온 거거든요. 우리가 가장 성경에 충실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17세기의 어떤 문헌이나 17세기의 어떤 진술 가운데 성경에서 정말 어긋난 거는 고칠 마음을 가져야 해요. 그 마음인거죠. 이거를 가장 잘 드러낸 것이 뭐냐 하면 우리의 인격과 삶이죠. 자유주의 신학보다 개혁주의 신학이 옳다거나 알미니안 신학보다 개혁주의 신학이 옳다는 것을 논쟁을 통해서도 드러낼 수 있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은 그 신학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인격을 가졌느냐 하는 걸 보고서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우리가 잘못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개혁신학이 잘못되었다고 인식시키게 되는 거죠. 우리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중요한 게 저는 인격변수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인격변수를 제대로 드러내야 사람들로 하여금 개혁신학을 추구하게 할 수 있다는 거죠. 이렇게 세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sdg.png : 감사합니다, 교수님. 오늘 아주 귀한 시간 내주셔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 것 같습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많은 분들이 교수님에 대해 더 친근함을 느끼게 되실 것 같습니다. 나아가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듣게 된다면 개혁신학이 좀 더 보편화되고, 확실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하시는 사역과 섬기시는 여러 가지 일들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이 :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12.11.15.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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