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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ㅣ 주나그네 목사

이광호 목사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예. 반갑습니다. 오늘은 SDG 개혁신앙연구회 두 번째 시간으로 이광호 목사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광호 목사님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실로암교회 담임목사이시고, 조에성경신학연구원에서 가르치기도 하시고, 한국 교회 개혁을 위해서 여러모로 활동과 영향을 끼치시는 귀한 목사님이십니다. 오늘 목사님과 더불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에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 예. 반갑습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제가 대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첫 번째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대외적인 일에 대해서는 관심있는 분들은 좀 아시는데, 목사님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셨는지, 또 개혁 신앙을 만나게 되신 계기가 어떤지 궁금증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웃음)상당히 할 얘기가 좀 많을 것 같은데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네. 편안하게 하십시오.



: 저는 사실 유아세례를 받았거든요. 우리 아버지가 유아세례를 받으셨고, 또 우리 어머니가 유아세례를 받았어요. 부모님이 유아세례를 받으신 분들이라는 것은 신앙 내력이 아주 오래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지요.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다보니까 어릴 때부터 주일학교에 열심히 나갔지요. 교회에 가서 다른 아이들처럼 신앙 생활하고, 또 주일학교 공부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그러다보니 기독교 문화랄까요, 그런 가정 환경 가운데서 제가 쭉 자랐어요. 제가 태어난 곳이 경북 의성 비안 화신리라고 하는 곳인데, 굉장히 시골입니다. 초등학교때까지 전기가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중학교때 대구로 유학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물론 교회를 찾아갔지요. 그 때 도시의 교회를 보니까 시골하고는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SFC활동을 하면서, 글세요, 성실했는가는 모르겠지만 비교적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가면서 제가 상당히 방황을 많이 했어요. 이유는 우리 아버지가 기독교인이고, 우리 어머니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나도 기독교인이 됐다라고 하는 점이 참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왜냐하면은 만일에 우리 아버지가 기독교인이 아니고, 우리 어머니가 기독교인이 아니었어도, 그대로 내가 예수를 믿었겠는가하는 회의가 많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원래 태어난 배경과 분리해서 생각을 해 봐야겠다하는 생각을 하면서 신앙에 대해 아주 심한 (내적)갈등을 했습니다. 당시 제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었는데, 법대 다니는 다른 학생들처럼 고시 공부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그럼, 그때까지는 목사로서의 소명이 없으셨다는 말씀이군요.



: 네. 목사와는 상관없는 삶이었죠. 제가 평상시에 가끔 사용하는 용어를 빌리자면, 의도적 무신론자가 된 거지요. 내가 부모님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객관성이 없고, 단지 어떤 기독교 가정에서 길들여 진 것처럼 생각을 하게 된 거에요. 그러던 중에 고시 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여러 절(사찰)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때는 고시 공부를 하는데 가장 좋은 장소는 절이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경남 밀양의 표충사라든가, 충남 예산 덕산의 수덕사라는 절이 있는데 상당 기간 동안 그곳들에 있었습니다. 절에 머무르는 동안 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자꾸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안 믿겠다라고 생각하구요.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이번엔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뭘 믿고 사는지 관심이 가더라구요. 절에 있는 동안에 틈틈이 불교에 대한 책도 보고, 또 승려도 만나 보고, ‘아. 이 사람들이 이런 걸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나.’하고 생각했죠. 이렇게 불교에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저는 교회를 완전히 떠났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어린 시절서부터 자연스럽게 신앙 생활하던 환경에 대한 어떤 지적 회의가 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 그렇죠. 교회에 대한 지적 회의도 있었고요. 당시 교회의 부정한 현상을 바라보면서 이럴 것 같으면 내가 예수를 떠나 안 믿겠다고 생각을 한 거에요. 교회를 의도적으로 거부한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교회를 다니면서도 성경에 대해서 공부를 거의 못 했구요. 교리 문답이나 신앙 고백서에 대해서는 거의 접해본 적이 없었어요. 단지 교회에서 기독교적인 활동만 했죠. 그러면서 ‘아. 예수 믿는 것이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심한 갈등을 했던 거죠. 그리고 제가 군에 갔는데, 대학과 군대 기간을 합쳐서 7년 동안을 철저한 무신론자로 살았죠. 무신론자라고 하는 것이 그 기간 동안 의도적으로 기독교에 대하여 반문을 제기하였던 것이죠. 


  그리고는 고시공부를 정리하고 취업을 했어요. 당시 권력에 관한 문제라든지 정치적인 문제들과 맞물려서 공부에 대해서 회의가 든거지요. 그렇게 뭘 하면서 살아야할까 생각하던 차에 마침 잘 알던 선배가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해운 회사로 저를 부른 거에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스카웃된 셈이지요. 회사에서 법률 문제를 다룰 일이 필요했기 때문에 저를 부른 거에요. 취업 후에 처음 발령을 받은 곳이 부산이었는데, 직장 생활을 해보니까 굉장히 재미 있더라구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흥미롭군요. 목사님에게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는지 몰랐습니다(웃음).



: (웃음) 좀 더 이야기하면, 그 때 해운회사가 하는 일이 뭐냐 하면 외국 배가 물건을 실어 오면 그걸 한국에 내리고, 다시 우리 짐을 그 배에 실어서 홍콩이라든지 인도라든지 다른 나라에 실어 보내는 거였죠. 그러다보니까 외국 선박에 승선할 기회들이 많았죠. 그 때 당시에 하역 회사라고, 선박 회사에 일을 맡겼는데, 그 분들이 일을 따야 하잖아요. 하청을 받아야 하는 데, 잘 봐달라고 돈을 줬죠. 그게 좋은 것은 아닌데. 어쨌든 그 때 그 책임자였던 선배가 그 돈을 혼자 가지지 않고, 남자 직원들에게 나눠준 거죠. 당시 토방 같은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외국 선박은 치외 법권이에요. 그 외국 선박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물건을 싣고 내리고 작업하는 동안에 할 일이 별로 없으니 거기서 뭘 하냐면은 고스톱을 친 거에요. 그것으로 돈을 따면 같이 식사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가끔씩은 나이트 클럽에 가는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저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웃음) 목사님께서 그런 곳(나이트 클럽)에도 가 보셨단 말입니까?



: 네. 따라 간거죠. 저는 뭐 춤을 추거나 한 것은 아닌데요.(웃음). 1980년 말이나 1981년 초쯤으로 기억되는데요. 한번은 부산에 있는 어느 호텔 나이트 클럽에 갔었는데,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흐물대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지옥이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 자리에 처음 간 것도 아니었는데, 그날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이게 바로 지옥이에요. 마음에 부담이 돼서 여기 못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바로 나이트 클럽을 빠져 나와서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히 보니, 도대체 내가 왜 사는지, 그러면서 너는 어릴 때부터 예수 믿는 집안에서 신앙생활 하지 않았느냐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에요. 그 날 밤새도록 갈등했죠.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그리고 다음날 일단 회사에 가서 바로 사표를 냈습니다. 갈등이 너무 심하니까 회사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로 대구로 왔죠. 소식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니까 식구들도 깜짝 놀랐죠. 가서 직장 생활 잘 한다고, 재밌다고 하던 아들이 집에 갑자기 왔으니 당황스럽잖아요. 


  그렇게 집에 와서 몇 일동안 심한 몸살을 앓은 것 같아요. 그런 중에 성경을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 거에요. 성경을. ‘너는 성경을 한 번도 안 봤지 않았느냐. 성경도 보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없다. 성경도 보지 않고 너는 혼자 신앙을 거부 했다.’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에요. 그래서 성경책 한 권을 들고서 제주도 어느 산을 간 거에요. 격리된 생활 속에서 성경을 그야말로 정신 차려 읽었죠. 그렇게 성경을 보니까 성경이 이런가 싶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은 거에요.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해 왔지만 성경이 이런 책이었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 때 어떤 광고가 났나 하면 총신 대학원에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공부를 한다는 광고가 난 거에요. 그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하면, 성경을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히브리어, 헬라어를 알아야 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제주도 생활을 접고 집에 들러 정리하고는 바로 총신에 간 거에요. 사당동이죠. 한 달 동안 기숙사에 머물면서 성경원어와 라틴어 강의를 들었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간 것이 아니라 성경 원어를 배우고 싶어서 들어가셨단 말이군요.



: 그렇죠. 나중에 보니까 신학대학원 입학을 위한 예비 언어 코스였던 거예요. 잘 모르고 간거죠. 하지만 열심히 공부를 했죠. 다른 사람들은 신대원에 가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데 저는 그냥 좋아서 공부를 한 거에요. 그러던 중에 거기서 만난 친구가 하나가 저를 보고 신대원에 함께 가자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합동측과 총신대학원이 정치적인 문제로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예, 그때 그러한 혼란 속에서 총신에서 합신이 갈라 나온 것으로 압니다.



: 그렇죠. 그때 합신이 나온거에요. 그런데 당시 다수의 학생들은 총신신대원을 갔지만 저는 (합동측을 보면서) 교회가 이래도 되는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런 중에 그 친구가 저에게 합신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어차피 자유로운 몸이니까 꼭 어디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고, 거기에 가면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 바르게 배울 수 있다고 하니까 관심이 생긴 거에요. 그래서 합신을 갔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합신에 입학하셔서 다니셨다는 말씀인가요?



: 반틈쯤 입학을 했죠. 합신 초장기에 남서울 교회에서 공부할 때인데, 박윤선 목사님 같이 훌륭한 분들이 선생으로 계셨어요. 그런데 조금 공부를 하다가 (신학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저랑 맞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하. 신학은 내가 하는 게 아닌갑다.’ 싶어서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지요. 그리고는 다시 대구로 내려와서 진짜 성경이 무엇인지를 한 번 연구해 보자는 마음에 날마다 혼자 성경을 보면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활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어요. 총신대학원에서 만났던 그 친구가 외항 선교회에서 함께 사역해 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온 거에요. 들어 보니, 여러 나라, 이슬람, 힌두권, 공산권 지역에서 온 선원들에게 성경과 전도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복음도 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하여 전에 해운 회사를 경험하게 하셨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결국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산에 있는 외항선교회에서 간사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낮에는 배에 가서 외국 선원들을 만나기도 하고, 또 전도지를 주기도 하고, 또 밤엔 공부도 하고, 한 6-7개월이 지났는가 싶습니다. 그해 가을, 외항선교회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던 한국오엠국제선교회에서 배를 타고 외국 선교에 동참할 젊은이를 소개해 달라는 연락이 제 본교회를 통해서 왔습니다. 당시 오엠선교회는 로고스 호라는 배를 타고 외국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선교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지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아, 저도 몇 년 전에 그 배가 인천에 정박해 있을 때, 방문해 본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오픈해서 배를 공개하더라구요.



: 네. 그건 아마 두 번째 로고스 호일 거고, 저는 첫 번째 로고스 호를 탔었습니다. 암튼 그 배에 승선하여 사역을 돕는게 어떻겠느냐고 저한테 얘기를 하는 거에요. 그런데 지난 일을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섭리가 항상 있었고, 이번에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 총신에서 만났던 친구도 찬성하고, 그 교회에서 후원까지 해 주겠다더군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교회에 속한 정식 교역자도 아니고, 안수도 받지 않은 상황인데도 말입니까?



: 그렇죠. 어떻게 보면 교역자도 아닌데 떠밀려서 가게 된거죠. 그래서 제가 1980년대에 배를 타게 됐습니다. 싱가폴에서 로버스 호에 올랐는데, 가서 보니까 그동안 제가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인거에요. 배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그런 그 젊은이들이 많았고요. 대부분 목사도 아니고 전도사도 아닌, 그냥 청년들일 따름이에요. 그런데 모두들 굉장히 신실하다는 느낌이 드는 거에요.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우리같으면 QT지요, 대화를 하는 내용들이 굉장히 경건해 보이는 거에요.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접했던 교권주의적인 것과는 다른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제대로 배워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서 또 배를 타면 다른 곳을 여행하게 되잖아요. 항해 중에는 시간이 많은 거에요. 그 시간에 성경도 보고, 신학 서적도 조금씩 보기 시작한 거죠. 그러던 중에 오엠선교회 안에 이슬람권 전도를 담당하는 아랍 월드팀이 만들어졌는데, 이전에 외항 선교회에 있을 때 이슬람권 사람들을 만나던 경험이 떠오르면서 관심이 가게 되어 이 팀에 자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프리카에까지 가게 되었지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아.. 그래서 아프리카 땅를 밟게 되셨군요.



: 그렇죠. 이집트, 수단 지역을 돌아 다니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교회도 보고, 성경 공부와 신학 서적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렇게 하다가 몇 년 후에 한국에 돌아 왔지요. 하지만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가를 두고는 여전히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외항선교회에서 저를 부산 지부의 총무로 발령을 내렸어요. 말하자면 이제 부산 지역 선교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외향선교회에서 총무로 보내면서 제게 어떤 제안을 했나 하면 부산에 있는 고신대학원에 가래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아. 그러니까 선교회에서 목사님에게 신학을 전공하라는 부탁을 한 것이군요.(웃음)



: 그렇죠. 저는 사실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생각은 안 했었죠. 그 때 당시 외항성교회 본부가 서울에 있고, 인천, 속초, 부산 등지에 지부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당시 외항 선교회에서 부산 지역의 선교를 좀 활발히 하기 위해서 저를 고신대학원에 보내는 것이 좋을 거라고 판단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신대학원에 들어간 거에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당시 고려신대원에는 어떤 분들이 선생으로 계셨나요? 목사님에게 기억날만한 분이 계시다면요?



: 그 때 당시에만 해도 훌륭한 교수님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제가 관심을 가지고 영향을 받았다고 할 만한 몇 분이 계셨는데요. 한국분들은 잘 아니까 넘어가고요. 화란개혁교회에서 보낸 고재수 교수님과 박도호(Batteau) 교수님이 계셨어요. 이 분들을 통해 화란개혁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전에는 장로교회 이외에는 알지도 못했고요. 실제로는 장로교회도 잘 몰랐지만요. 그리고 미국정통장로교회(OPC)에서 파송한 하도례(Theodore Hard) 선교사님과 미국장로교회(PCA) 소속 신내리 선교사님도 계셨지요. 이분들을 보면서 화란개혁교회와 미국정통장로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거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그제서야 비로소 개혁주의다운 개혁주의를 만나시게 된거군요?



: 그렇죠. 그전에도 오엠선교회에서 개혁주의 사상을 접하긴 하였지만요. 그런데 신대원에 다니면서도 상당히 갈등을 했어요. 왜냐하면 당시 신학교 행사 때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 불신자들이 와서 축사를 한다거나 하는 일등이 이해가 안 되는 거에요. 이런 것 때문에 갈등을 하기도 하고, 확인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중에 저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신학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목사님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기의 신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대학 시절의 신앙적 방황과 좌절, 성경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선교 사역에 헌신하신 지난 날의 이야기와 그리고 마침내 개혁주의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시게 된 과정을 들어보았는데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그대로 반영된 지난 날의 여정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말씀해 주신 내용 속에서 그동안 궁금증을 가졌던 목사님의 약력이 이해가 되었습니다(웃음).


 그런데요. 목사님의 약력 중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서 여쭙고 싶습니다만,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와 아시아신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조직신학)을 공부하셨잖습니까? 그런데 박사 과정은 대구 효성카톨릭대학교에서 비교 종교학을 하셨더라구요. 이 부분이 잘 연결이 안 됩니다. 그 연결점을 듣고 싶습니다.



: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신대원을 졸업하고서 선생님을 잘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였어요. 당시 고려신대원에도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지만,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으로 가게 된 이유는 한철하 박사님이 거기 계셨기 때문이지요. 그 분이 칼빈학회 회장도 역임하셨는데, 그분을 통해서 칼빈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 외에도 제가 보기에 좀 편안하게 학문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박사 과정은 이슬람을 연구하였는데, 원래 학문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고요. 사실 지금도 학자들에 대해서 약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제가 비교종교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선교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지요. 주 관심 지역은 이슬람권이었구요. 그런데 당시만 해도 이슬람권 지역을 방문하는데 신분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이슬람권은 어딜 가나 신분을 묻는데, 내가 목사입니다 하면 안되잖아요. 그런데 이슬람권 지역에서는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에 대해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문화가 있었어요. 선생님처럼 인정해주는 거에요. 내가 선교지(이슬람권)에 가서 명함을 줄 때에, 나는 이런 종교학 박사입니다 하게 되면은 그 분들이 실제로 경찰에 잡혀가도 명함 하나면 바로 나올 수 있었어요. 말하자면 봐주는 차원이 아니고 존경한다는 거죠. 이 사람은 선생님이니까 아무렇게나 거짓말하지 않을 거다 하는 그런 인식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럴는지는 모르겠네요. 하여튼 그런(박사라고 하면 이슬람권 지역을 출입하는데 용이하다는) 이유 때문에 공부를 하게 된 거죠.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어요. 제가 1980년 초에 이슬람에 관련된 책을 하나 번역한 게 있습니다. 제가 북아프리카에 있으면서 본 책인데요. 영국 출신의 북아프라카 선교사였던 말쉬(C. R. March)라는 분의 책입니다. 이걸 보면서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번역을 하게 됐습니다. 아마 1984-5년 쯤 CLC 출판사(「모슬렘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를 심자」)를 통해서 나왔을 거에요. 그런데 그 때만해도 우리 사회가 이슬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던 때라, 많은 분들이 저한테 이슬람을 물어오는 거에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소위 이슬람 전문가가 되신 거네요.



: 대답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죠. 그렇게 원래 이슬람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공부를 하게 된 중요한 이유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그렇다면 박사 공부를 하기 이전부터 선교사에 관심이 있으셨던 거군요.



: 네. 선교에는 그 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거죠.


   저는 선교에 대해서 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이슬람권 지역을 자주 방문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해왔어요. 제가 국제윈(WIN)선교회 한국 대표를 한 십여년 했었는데요. 일부러 선교지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겠다는 것도 아니었어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아무튼 비교 종교학 공부가 개혁주의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봐야 하겠군요.



: 당연하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그렇다면 다소 생소하게 여길 수 있는 이 두 분야(칼빈주의와 선교)를 어떻게 연결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이 질문의 요지는 흔히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라고 하면 신학은 좋은데, 전도나 선교가 약하다고 보는 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 제가 보기엔 선교회나 선교 자체에 대한 오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선교는 금세기에 활성화 된거 거든요. 2-3세기전만해도 지금과 좀 달랐죠.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에 나타나는 현상으로서의 선교만을 생각하다 보니까 자꾸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요. 엄격한 의미에서 이슬람은 기독교 이단이잖습니까? 그래서 이슬람의 개념과 형성 과정을 역사를 통해 보는 것은 많은 유익을 줍니다. 특히 그들의 잘못된 신관이라든지, 인간이나 내세에 대한 이해등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 신앙과의 차이를 확인하게 되니까 저로선 유익했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어떤 면에서는 비교종교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이슬람뿐만 아닌 그 외 다양한 종교나 신앙에 대해서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했다시피 저는 과거에 명목상의 기독교인이었고, 또 한때는 철저한 무신론자로 살았습니다. 말하자면 충실한 진화론적 사고를 한 거죠. 만일 신이 없다면 어떻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라든지 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용어일 뿐이지 않나 하는 회의 등을 한 거죠. 그리고 제가 불교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고요. 그러면서 이제 이슬람도 보게 된 거죠. 이렇게 불교나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본다는 것은 결국 인간을 보는 것이지요. 인간의 죄성이나 인간의 조급함을 보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종교를 통하여 진리가 아닌 것과 또한 죄에 빠진 인간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의지하며 사는지를 알게 되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 유익하고 재미있게 공부했다고 할 수 있는 거죠.(웃음)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좋은 경험이자 배움이 되셨을 것 같습니다.


  이제 실로암교회에 대해서 여쭙고 싶은데요. 사실 많은 분들이 이광호 목사님 하면 실로암교회를 떠올리는데, 실로암교회의 설립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사실 지나온 과정을 보면 제가 하겠다고 해서 한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누가 나에게 무엇을 하자고 하면 상대방이 이미 나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따라갑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갈만하니까 가야 한다고 하고, 할만 하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내 자신의 판단보다 상대의 판단이 우월하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저는 신대원을 졸업하자마자 SFC 간사를 했습니다. 그때도 하려고 해서 한 것이 아니라, 같은 학교를 나온 선배 한 분이 같이 하고자 해서 하게 되었지요. 저는 원래 생각이 없었는데, 그 분이 저를 보더니 나에게 꼭 맞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 그렇습니가?” 하고 SFC에 간거고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웃음) 신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부탁에 의해서였듯이, 이 일도 부탁 때문에 하신 것이군요.



: 그런 셈이지요.(웃음) 그렇게 3년간 SFC 간사로 대구 지역의 대학생을 지도하다가 마지막 간사 생활을 할 즈음이었습니다. 원래 우리 교회는 캐나다에 있던 어느 한인 교회의 지원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1987년도 가을에 KAL기 폭파사건이 있었죠. 그 때 전 세계적으로 시끌시끌했었는데, 캐나다 한인 사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여러 한국 사람들이  위령제를 지내는데 거기에 일부 현지 한인 교회들이 가담을 한 거예요. 그것을 토론토에 있던 어느 한인 교회가 보면서 캐나다에 있는 한인 교회가 이렇게 혼합주의에 빠져 있으면 우리 조국교회는 얼마나 더 심할까 하는 생각을 했나 봐요. 당시 그 교회는 중남미 지역에 선교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일 후에 조국 교회로 관심을 돌리면서 한국에 정말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자고 마음을 먹은 거예요. 그러면서 이 일을 할만한 목회자를 찾은 거죠. 그 때 어떤 분이 캐나다 교회에 저를 소개했나봐요. 저에 이력에 대해서 전달했겠지요. 제가 과거에 무신론자였다는 사실은 빼고요.(웃음) 그리고 그 교회에서 저를 만나러 한국에 온 거예요. 와서 저를 보고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데 “저는 잘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 저는 교회를 크게 할 수도 없고, 정말 잘 할 자신도 없었어요. “그냥 세월따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순종하면서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그분들이 저에게 그런 자세가 좋대요. 그렇게 해서 우리 교회가 세워지게 된 거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굉장히 흥미롭군요. 실로암교회라고 이름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당시 제가 요한복음을 공부하고 묵상하고 있었는데, 요한복음 9장쯤에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의 기사를 대하면서 충격을 받았지요. 그 때 묵상한 게 지금도 생생해요. 우리는 빛 때문에 모든 사물을 분별하잖아요. 동물도 알고, 식물도 알고, 색깔도 분별하고, 사람 얼굴도 아는데, 한번도 빛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사물에 대한 아무런 인식 개념이 없잖아요. 단어나 용어에 대한 지식은 있는데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알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빛이 없는 상태에서 인간들이 보는 것은 실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이 빛이 있었고 예수님께서 ‘내가 곧 빛이로다’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으로 인식 능력이 전혀 없는 우리가 사물의 판단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이런 묵상 가운데 실로암교회라 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을 한 거죠. 실로암교회라는 말 속에는 ‘우리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그 빛 때문에 말씀을 통해서 전부 새롭게 보기를 원합니다‘라는 소망이 담겨 있어요. 그렇게 시작된 목회가 지금까지 오고 있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교회의 설립 과정이 다들 특별하겠습니다만 정말 예상치 못했던 과정입니다.


  그런데 외국의 한인 교회의 전폭적인 관심과 지원 가운데 세워진 교회라면, 지금 실로암 교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개혁 교회로 자리매김되고 있는데, 처음부터 캐나다 한인 교회가 요구한 내용이었나요?



: 아니죠. 그 교회는 혼합적이지 않고, 말씀에 순수한 교회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일반적인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를 말하는 건가요?



: 그렇죠. 그 당시만 해도 한국 사회나 한국 교회가 아주 시끄러웠지요. 그런 현실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교회를 세운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교회를 세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 때가 1989년인데요. 수년간 많은 도움을 받았지요. 그러다가 1994년에 우리 교회에서 후원 중단을 요청하였습니다. 자립한 거죠. 물론 부유하게 자립한 건 아니고요.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겠다 판단을 해서 자립을 한거죠. 그 이후에 조금 교류가 있다가 지금은 거의 교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때 당신 연세가 많으셨던 분들이 돌아가셨거나 은퇴한 이유도 있고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그렇군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교회가 세워지고, 지금까지 20여년 넘게 한 교회에서 줄곧 사역해 오고 계신데요. 그동안 가장 보람된 일과 가장 어려운 일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 보람이다, 어려움이다 할만한 것은 별로 없고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웃음) 제가 질문을 잘못했군요.



: (웃음) 오히려 저는 (교회)밖에서 시달리면 (교회)안에서 위로 받는다고 할까요. 교회 밖에서 이러저러한 일을 겪다가도 교회에 오면 항상 편안하니까요. 마치 가족이 밖에 나가서 직장에서나 학교에서 좀 힘들어도 집에 오면 푸근하잖아요. 다 해소되는 거죠. 저 같은 경우에도 밖에서는 생각하기 따라서는 좀 어려움이 있었어도 교회 안에서는 편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방금 교회밖에서 겪은 어려움도 있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어려움이었는지 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불편하시면 답변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웃음)



: 할 수 있죠. 뭐 사실.(웃음)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사실 목사님 개인의 신변과 관련된 일이겠지만, 어찌 보면 교회와 관련된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좀 더 확장해 본다면, 한국 교회와도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 제가 고신 교단에 있을 때, 지금도 그렇지만, 여러 목사들과 가까이 지냈지요. 그런데 당시 제가 속해 있던 노회에서 몇 분이 제명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제명까지 당할 사안이 아닌데 그렇게 된 거에요. 그래서 제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분들을 방어를 한 거죠. 방어를 하게 되다 보니 저절로 (노회와) 대립하게 된 거예요. 제가 제명을 당할 때는 특별한 명분이 있는 건 아니었죠. 이를테면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문제 삼았어요. 사실 저는 주일 성수에 대해서는 아주 강조를 합니다. 그런데 주일 성수나 십일조에 대해서 오해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저는 언약적 개념 때문에 주일(성수)와 십일조는 우리가 아주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주일성수는 강조하는데 반해, 십일조에 대한 언약적 정신을 포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주일이 가지는 언약적 의미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십일조에 대한 그 언약적 측면도 같이 얘기해야 되지 않느냐.“라고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속해 있었던 노회에서 제가 쓴 글 가운데 일부를 자기 식대로 해석해서 문제를 제기했던 거에요. 가끔 글을 투고하면 어떤 언론사에서는 글을 요약해서 싣는 경우가 있잖아요. 신문 지면을 맞춰야 되다 보니까. 지면을 맞추기 위해 중간중간 잘라버리고 하다보니 저를 마치 주일을 강조하지 않는 사람처럼.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그러니까 목사님을 마치 율법폐기론자처럼 오해하게 만들었겠군요.



: 그렇죠. 그런 일도 있었고. 그리고 당시 또 음주 문제가 있었어요. 그때 저는 노아 사건을 언급하면서, 만일 노아가 홍수 이전에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비판적이었다 하면 노아가 술을 안 마셨을 것 아니냐는 의미로 이야기 한 적이 있었어요. 그걸 길게 이야기 했는데 이제 또 어느 신문에서 옮겨 쓰면서 저는 술에 대해서 자유롭다고 얘길 한 거예요. 이런 문제 때문에 사실은 제가 그 교단을 나오게 된 거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목사님의 입장에 대해서 (제명 결정을 한) 노회에 충분히 해명할 기회가 없으셨나요? 



: 했었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그럼에도 제명 처분을 받으셨단 말씀이시군요.



: 원래 정치란게 그렇잖아요. 소명을 하고 충분히 얘길 해도 어떤 근거자료를 채택할 것인가 하는데 문제가 있는데, 말로 설명한 것보다 일단 페이퍼로 나온 것에 대해서 이게 근거다라고 하면 그런 문제가 발생하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아.....네. 알겠습니다. 안타까운 일이네요.



: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끔은 그 교단에 남아 있었으면 참 좋았을 뻔 했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또 하나는 이런 걸 통해서 여러 형제들이 교훈을 삼는다면 좋겠다고 생각도 들고요. 역사가운데서 늘 있어 온 일이니까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그렇다면 그 이후로 실로암 교회가 (어떤 교단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교회 형태로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 예. 지금 현재는 독립교회인데 우리 당회에서는 교회가 단독으로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구요. 왜냐하면 보편 교회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애쓰기 때문이지요. 교회가 보편 교회적 관점에서는 그리스도 몸에서 떨어질 수 없고 분리될 수 없으니까요. 종종 우리 교회를 보고 함께 하자는 교단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여러 가지 걸린 게 좀 많았기도 했고, 잘못하면 오히려 속앓이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든 경우도 있고요. 아마 조만간 이와 관련해서 어떤 일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현재 실로암교회가 독립교회 형태로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정통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를 지향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정신을 함께 하는 분들과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회 연합을 도모하고 계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 그렇죠. 우리는 외국의 교회들 가운데도 좋은 교회가 있다면 관심을 가지고 우리 신앙을 점검하기도 하고, 그런 교회가 가지는 생각과 우리 교회에 대해서 늘 같이 견주어 보려고 애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건전한 교회들이나 건전한 신학자들도 늘 의식하고 있습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근래에 WCC와 같은 단체를 통해서 교회 연합 운동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요. 목사님께서 보실 때에 실로암 교회와 같은 정신을 가진 교회들이 연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있다면 어떤 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적어도 성경 말씀에 대한 분명한 고백과 성경 말씀의 틀 위에서의 신앙고백, 그리고 catechism(교리문답)에 대한 기본적인 고백이 있다면 어느 정도 서로간의 교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교회는 참된 교회라고 해서 마치 자신이 최고의 교회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되고요. 다만 상식적인 교회일 따름이죠.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떤 교회이든지 과연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사랑하신다면 함부로 정죄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역으로 만일 하나님의 교회를 의도적으로 해롭게 하거나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고 한다면 용납할 수 없는 거죠. 그런 점에서 의도적으로 교회를 흔들거나 말씀을 흐리거나 세속주의나 자유주의 쪽으로 간다면 우리가 함께 교제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함이나 신앙고백, 그리고 천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 가는 기본 개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이미 연합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미 연합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연합된 상태를 우리가 어떻게 조심스럽게 확인해 나갈까 하는 문제만 남은 상태이고요. 그런 차원에서 우리나라에도 좋은 교회들이 상당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교회 연합을 생각할 때, 심정적 연합도 있지만 제도적 연합이라는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제가 흥미롭게 본 것 중에 하나가 실로암 교회의 고백 진술서인데요. 이 진술문의 내용이 실제로 다른 교회와의 연합에 있어서 절대적 기준이 되어진다고 보십니까?



: 아니요. 절대적은 아니고요. 사실 그것은 우리 교회에서 만들어 사용하고 있던 것인데, 이 진술문을 받아들인 이웃 교회들이 좀 있습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좀 민감한 점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여성 안수라든지, 진화론 문제와 같은 것입니다. 요즘 유신 진화론을 많이 말하는데, 사실상 다른 형태의 진화론일 따름이죠. 또 민감한 문제 중에는 자살은 죄다 라든지, 인위적인 낙태는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는다 라든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 교회에서는 신학적 근거를 통해서 입장을 분명히 하죠. 그런데 이웃 교회들 가운데는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채택하자고 한 교회들이 더러 있었던 겁니다. 이런 경우에는 연합이라기보다는 교제하고 있는 것이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넓은 의미에서의 교회 연합을 전제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금은 교제를 하고 계신다는 말씀이군요. 



: 예. 그렇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실로암 교회와 같은 정신을 가진 교회들이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이제 좀 다른 주제에 관해서 질문을 드리지요. 목사님께서는 오랫 동안 교회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예를 들어 조에성경신학연구원이나 달구벌기독학술연구회와 같은 기관에서 교수 사역을 하고 계신데요. 이 사역에 대한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 제가 주로 학생들한테 가르치고 싶은 과목은 사실은 성경이고요. 그런 성경 텍스트를 강조하다 보면, 결국 교회에 관한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교회 직분이라든가, 당회나 제직회같은 교회 조직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국 교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집사회라든가, 당회의 역할에 대해서 말이지요. 우리 교회의 경우에는 주일 설교본문은 당회에서 정합니다. 물론 매주 정하는 것은 아니고요. 강설을 마치면 다음에 강설한 성경을 당회에서 정합니다. 장로님들이 심방과 대화를 통해서 다음 강설에는 어떤 주제이면 좋겠다ㅍ해서 결의를 하면 제가 따릅니다. 또 한 가지 저는 교회 재정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우리 교회는 재정과 행사에 관련된 일은 집사회에서 전적으로 도맡고 있습니다. 당회는 주로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나 신학토론과 같은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갖습니다 근래에는 당회에서 성찬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하면,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점점 관심을 보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속해 있는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는 거에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웃음) 그런 배움을 다니는 교회에 그대로 전하면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 예. 왜냐하면 우리도 (실로암교회 같이) 이러이러해야 하지 않습니까하고 제안을 하고서 대화가 잘 안되면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그런데 그러한 일이 사소한 문제 같으면 고치면 되는데, 교회 제도와 연관되어 있을 때는 상당히 어려운 거죠. 그런 모습을 늘 보면서 한계를 뛰어 넘는다는 게 굉장히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서 저 같은 경우 고집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찬에 관해서 말할 때에 저는 보편 교회의 원리에 따라 통제하는 가운데 개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개혁교회들에서는 설령 목사가 온다 해도 성찬을 허락하지 않지 않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방식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구요. 만일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시지 않습니까? 주일날 오시게 되면 성찬을 하는데 당회에서 장로님들이 복수로 누구든지 가서 아주 짧은 인터뷰를 합니다. 그리고 성찬 참여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서 성찬 참여를 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와 같은 경우에는 대개 개방적이잖아요. 세례 받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아무런 언급 없이 다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말하다 하다 보면, 비판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학생들은 괜찮은데, 그 사람이 교회에 가서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라고 하면 문제가 생기는 거죠. 그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그러한 가르침이 목사님이나 실로암교회만이 갖고 있는 독특함이라고 하면 사실은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교회 역사 속에서 아주 깊은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성경의 바른 해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공감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요. 그럼에도 교회 현장에서 이러한 가르침을 생각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교회의 신학과 신앙 환경의 열악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성경에 대한 관심은 성경적인 교회론으로 집약되고 결국에는 교회 개혁으로 나아가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고 생각되는데요. 그런데 그동안 목사님께서는 실제로 한국 교회의 개혁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겠지만, 목사님 보실 때에, 현재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교회)개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원래 직분은 개인이 취득한 게 아니고 교회가 맡긴 거라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되겠다라고 하는 것도 교회의 요청에 의해서 돼야 하고, 장로나 집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직분자를 세워 맡길 때는 맡긴 내용이 있잖아요. 그 내용이 잘 실현되도록 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우리 교회에서나 만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은 교회는 성경 말씀으로 무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서나 또 교리문답을 통해서 신앙의 뼈대를 잘 세워야 하고요. 그와 더불어 인문학적 소양을 통하여 신앙의 체질이 좀 바뀌었으면 싶어요. 행사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 말고요. 내실을 튼튼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어요. 자랑은 아닙니다만, 우리 교회의 경우에는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칩니다. 중등부 아이들에게는 소요리문답을 되풀이 해서 가르치고요. 고등부학생들은 현재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장년은 지금 조직신학을 공부하고 있죠. 그리고 격주 금요일마다 기독교 강요 독해를 하고 있는데요. 한 3년 반쯤 됐는데, 지금 기독교 강요 4권 반쯤 읽어가고 있습니다. 집이 멀어서 이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은 가급적이면 가정에서 그 진도만큼 공부하도록 권면을 하합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서는 소요리문답을 가정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어떤 때에는 아이와 어른이 직접 성경 본문을 주해해 보도록 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일들이 우리 교회에는 매우 자연스러운 건데,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을 우리 교회가 하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100년 후를 내다보자는 거예요. 100년 후에 우리 교회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는 말입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그때쯤이면 주님께서 오시지 않을까요?(웃음)



: 오시기를 바라지요.(웃음) 아무튼 그때는 세상도 많이 변할 것이고, 잘못된 교회들은 세상에 더 많이 편승할 거예요. 저는 100년이 지나도 고집스럽게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가지고 세상에 버티면서 살아가는 교회들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교회 아이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려는 이유도 그런 교회를 우해서 이고요. 현재적 관점보다 미래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 유행하는 무엇엔가 획일적으로 따라가는 교회들보다는 좀 우직스럽고 답답해 보여도 그런 교회들이 더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공감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일반 교회 말고 한국에서 개혁주의나 개혁교회를 지향하는 그런 교회들에 대해서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  근래에 와서 신앙고백서나 교리문답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그런데 저는 신앙고백서나 교리문답이 가르쳐질 때, 성경말씀에 대한 강조가 적어도 몇 배는 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제가 우려하는 일 중의 하나는 제가 아는 교회나 교인 중에 말씀에 대한 관심과 애정과 연구는 없이 우리도 남들처럼 교리문답을 공부한다는 점만 부각시키려는 이들이 있어요. 물론 교리문답이나 신앙고백서를 가지고 공부하는 것은 참 장려할만해요. 그런데 그 탄탄한 배경이 되는 성경 말씀에 대한 이해는 변화가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저는 상당히 우려를 합니다. 시대의 경향성이라고 얘기하는데요. 신대원에서도 교리문답이라는 커리큘럼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좀 있어 보이는 듯 하지만, 실제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사실 우리가 고백하는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이 작성될 때에는 성경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을 밝히는 결과물로서 신앙고백서가 있게 된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 신앙고백서에 대한 문자적 교조주의나 혹은 상황적으로 신앙고백서를 성경보다 더 높이는 오류를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제 몇 가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여쭈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선교적 활동의 일환으로 중국이나 브라질에 강의를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기대와 성과가 있으신지요?



: 저는 우리 시대의 선교를 좀 비판적으로 보는데요. 시대적 경향성에 서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행동신학이라든지, 해방신학이라든지, 민중신학이라든지, 여성신학이라든지 하는 것이 사실 활성화되기는 1960년대 이후에 발전했는데, 그에 기반한 흔히 말하는 복음주의 선교학의 선교가 어느 지역에 가서 복음 전하면서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하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집니다. 혹자는 칼빈같은 이는 선교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데요. 그건 아니고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말한 선교는 교회가 교회를 만드는 사역이었죠. 예를 들어서 어느 지역에 선교사가 간다고 하는 것은, 보내는 교회는 모교회가 되고 선교지에서는 자교회를 세우는 것이 되는 거죠. 그리고 선교사는 실제로 말씀 선포와 성례와 그밖에 교회로서 해야 할 모든 것들을 행하게 되고요. 그렇게 되지 않으면 올바른 출산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죠.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선교의 기본 골격이라 한다면, 두 번째 개념은 이미 세워진 건강한 교회가 그 교회들을 어떻게 돕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말씀에 탄탄하게 서 있어야 할 교회가, 그리고 올바른 신앙고백이나 올바른 교리를 통해서 보호받아야 할 교회가 그렇지 못할 때에 건강한 교회가 가서 도와주는 거죠. 저는 이러한 일이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목사님의 이런 선교관도 보편 교회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겠죠?



: 예. 우리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해왔죠. 대개 선교지에 있는 교회들은 약하잖아요. 역사도 짧고, 바람도 세죠. 자유주의라든지, 신비주의라든지 다양한 사조들이 들어오게 되는 그런 교회에 왜 하나님의 말씀과 교리가 중요한지를 전하는 것이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같은 경우는 누구든지 필요로 하면 제가 갑니다. 저만 가는게 아니라 우리 교회 장로님들도 가시곤 하는데요. 어느 곳이든지 우리 교회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을 하면, 우리 교회가 결의해서 보내 주는 거죠. 만약 우리 교회보다 강한 교회라면 우리에게 오라고 요청하지는 않을 것 아니에요? 그런 경우에는 우리 교회에서 제반 경비를 다 댑니다. 보편 교회를 생각해서 가까운 서울뿐만 아니고 미국든지, 아프리카든지, 어디든지 우리 교회가 감당할만하면 가는 것이죠. 저는 필요로 하는 자 편에서 요구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에 있는 교회는 거부할 권리가 없는 것이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교회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있게끔 하셨다면 함부로 거절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거에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선교의 기본 골격입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감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부러운 것이 이러한 일은 목사님  개인 생각만으로는 사실 어려운 측면이 있을 텐데, 교회나 당회가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성숙해 있는 하나의 반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를 들으시는 분들이 선교에 대해서 매우 신선하고 실천적인 메시지를 얻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날 선교라고 하면,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교회들도 더러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누군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거절할 권리 없다는 말씀은 굉장히 공감하고요. 선교에 대해서 새롭게 인식하는 도전의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 합니다. 목사님, 그간 책 많이 쓰셨잖아요. 요즘도 계속해서 책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렇게 바쁜 중에서도 어떻게 이런 좋은 책들을 연속적으로 출간하시는지, 노하우 좀 가르쳐 주세요.(웃음)



: (웃음) 종종 그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하나 밝힐 게 있는데요. 순진한 분들은 저 사람은 책을 쓰니까 상당히 폼이 나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웃음)그런가요?



: 일반적으로 어린 교인이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거지요. 그런데 기실 글을 쓰는 사람은 굉장한 부담을 가지죠. 말은 몇 사람에게 하는 것이지만, 책은 그렇지 않잖아요. 어떤 점에서는 사실 책을 하나도 안 쓴 사람은 편한 사람이에요.(웃음) 의도하지는 않지만, 인간인지라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내용이 군데군데 섞여 있을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잘 발견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래서 책을 쓰는 사람들은 늘 부담을 가지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써야 하지요. 그 때문에 늘 책을 쓸 때 부담을 가집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말씀하신대로 성경외에 완벽한 책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거룩한 부담을 갖고서 하시는 일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고, 또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는 거죠.(웃음)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그렇게 말씀하셔도 독자들 편에서는 늘 감사하고 기대가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예. 고맙습니다.(웃음)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그런데 여러 가지 사역을 하시면서 책도 쓰셔야 하는만큼 시간 관리와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할 것 같은데요? 목사님의 경우에는 어떻게 관리하세요?



: 저는 산에 자주 가구요. 학생들에게도 산에 자주 가라고 권합니다. 바다도 좋고요. 가능하면 밤에 산에 가서 별도 좀 보라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사실 인공구조물에 갇혀 살잖아요. 자동차, 스마트폰, 인터넷... 이런 것에 빠지게 되면 인간을 숭앙할 수밖에 없어요. 역시 인간은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데 자연을 보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되지요.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늘 발견하게 되구요. 그래서 산에 자주 가려고 합니다. 물론 시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또 한 가지는 늘 생각을 하죠. 버스를 타거나 집에 있거나 산에 갈 때도 항상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뭐든지 잘하려고 하지 말자라는 거예요. 목회도 잘 하려는 생각보다는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교회가 맡긴 일을 감당하자는 것이고, 가정에서도 훌륭한 가장이 되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하는 만큼 하자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간혹 어떤 분들이 저보고 글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쓰느냐고 묻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제가 쓴 글이 편하대요. 그러면 제가 한마디로 웃으면서 “난 잘 할 마음이 없으니까.”라고 얘길 하죠. 애써 잘하려고 하면 자꾸 보고 다듬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잘할 마음이 없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지요. 내가 못한 일은 다른 사람이 해 주면 좋고, 아니면 다음 세대에 누군가 해 주면 좋고. 또 저는 맞붙어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명백한 잘못이나 불의에 대해서는 참견하지만, 이념가지고 싸우는 것은 원하지를 않아요. 제 글에 대해서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에도 “그렇습니까?” 하고는 가만히 있어요. 어쩌면 상대편 말이 맞을 수도 있고요.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이나 다음 세대에 더 정확한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니까 그런 정도로 생각하죠. 암튼 편하게 생각하니까 쓰는 거죠.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글 잘 쓰는 비결이 편한 마음을 갖는 것이군요. 그런데요. 잘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사람이라면 잘 하려는 마음이 없는데도 잘하는 분을 보고 또 다른 좌절을 맛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는데요(웃음) 


  기왕에 책 이야기가 나왔으니, 목사님께서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 3권을 부탁드리면 성경말고 어떤 책이 있을까요? .



: 사실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책보다는 사람을 소개해요. 예를 들어서 저는 우리 믿음의 선배 중에 칼빈 같은 분은 잘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하나 선택하라고 한다면 이분의 책인 기독교 강요를 최고로 꼽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 교회에 기독교강요를 제대로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고요. 목회자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이유는 신학교에서 그럴 기회를 사실 안 준거죠. 칼빈이 중요한 것도 알고 기독교강요가 중요한 것도 아는데 그 안에 무엇이 쓰여져 있는지 잘 모르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성도들에게 칼빈의 책들을 소개하면서 그중에서도 기독교강요 최종판을 꼭 읽으라고 권면합니다. 혼자 읽기 어려우면 여러 명이 함께 읽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F.F. 브루스를 상당히 좋아하죠. 오래전 이야기인데 80년대 중반에 제가 F.F. 브루스 책을 하나 번역한 게 있어요. 오래됐죠. 아주 얇은 책이에요. 그것도 CLC(기독교문서선교회)에서 출판되었을 텐데 아마 지금은 없을 거에요.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혹시 제목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 「예수님의 수제자들」이라는 책이었어요.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저는 이 분에 대해서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예리함 면에서는 생각할 거리를 주는 좋은 선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한 사람 소개하면, 저의 선생님이시기도 한 고재수 교수입니다. 


  그리고 책읽기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저는 사람들에게 잡식성 독서는 하지 말도록 얘기해요. 요즘 같으면 책 많이 읽으라고 해서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 유행인데, 저는 읽어야 할 것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목회자의 경우에는 칼빈에 대한 이해가 정확해야 되고요. 16세기 종교개혁시대에 활동한 개혁자 몇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읽고, 또 근현대의 서구 개혁주의자들 중 한 두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그러죠. 그리고 가급적이면 한국에 있는 학자들 중에서도 한 두 사람을 택해서 그 사람에 대해서 전문가가 되라고 하죠. 저는 한국의 신학이 서구 사대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데요. 이렇게 자신이 선정한 몇 사람에 대한 전문가가 되면, 그때부터 분명한 기준이 생기므로 건전한 비평이 가능해지지요. 이렇게 독서를 권하고 싶어요. 좀 복잡했나요 ?(웃음)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아닙니다.(웃음) 제가 이어서 하려고 한 질문에 답변까지 다 해 주셨습니다. 젊은 목회자와 목회자 후보생들이 참고해야 할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자료들을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과 함께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인내가 요구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혹시 이 기회에 목사님께서 직접 쓰신 책 중에 여러분이 꼭 읽기를 바라는 책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 저는 제가 쓴 책 다 읽으라 하죠.(웃음) 그중에서도 창세기와 마태복음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 창세기와 마태복음을 모르면 구약과 신약의 다음 내용이 진도가 안 나가잖아요. 창세기의 말씀이 얼마나 심오한가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되고요. 신약에서는 마태복음을 잘 살펴야 해요. 마태복음 1장은 사실 구약의 내용이잖아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부터 시작하니깐 결국은 마태복음에 대한 이해를 해야 창세기와 마태복음에 대한 연결고리가 생겨서 그 다음에 요한계시록까지 가는 거죠. 그런 이유로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창세기와 마태복음를 권합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창세기와 마태복음을 추천하신다니까 설교에 대해서 궁금해 집니다. 목사님은 설교 준비를 어떻게 하시는지요? 목회자라면 설교에 대한 부담을 늘 갖게 되는데 어떻게 설교를 준비하고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저는 설교란 언어 전달 행위라고 이해합니다. 말하자면 설교란 원리적으로 내가 소화한 것을 전한다기 보다는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죠. 15세기, 구텐베르그가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1450년)까지만해도 교인들 가운데 아무도 성경책이 없었습니다. 비로소 우리 시대에 와서야 개인 성경을 다 가지게 된 거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교회 안에는 항상 문맹자가 있었고요. 우리 교회도 문맹자가 많아요. 2살, 3살 영아들과 미취학 어린이는 어떤 점에서 문맹자인 거죠. 그런데 설교자는 성경책을 펴서 읽을 수 없는 사람을 향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말합니다.”라고 설교 하잖아요. 그러면 듣는 사람은 ‘아, 성경이 저렇게 이야기 말하는구나.‘하고 이해를 할 수 밖에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설교는 잘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설교를 통해서 청자를 인위적으로 감화시키려는 일에 대해서 굉장히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설교자가 중간에서 어떤 기술적 방법을 통해서 회중을 감화시키려 하다 보면, 오히려 말씀하는 분의 의도를 왜곡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 본문을 제 임의대로 선택하지 않고 당회가 결의한 사항에 따릅니다. 당회가 설교할 성경을 정하면, 거기에 맞춰 본문을 따라 설교를 하는 거예요. 우리 교회의 경우에 내년 1월 중하순부터 사사기 설교를 시작하기로 되어 있는데, 지금 저는 이미 사사기 속에 들어가 있는 거죠. 설교 준비를 그때 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하고 있는 거죠. 사사기 말씀을 묵상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학자들에 대해서 살펴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설교를 준비하기 때문에 대개 다음 주일 설교 같으면 이번 주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완성됩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설교 준비에 있어서 기술적으로 요구되는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저는 주석을 먼저 보지말라고 말합니다. 설교를 위해서 먼저 묵상을 하고, 설교 준비를 한 후에 다른 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주석을 먼저 보게되면, 그 내용에 매여서 따라가게 되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서 어느 사람의 생각만을 선별하려는 우려도 있어요. 저의 경우에는 말씀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뛰어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틀린 것을 구별해 낼 수 있는 정도의 기본 실력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개인적으로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웃음) 



: 아니요. 별말씀을.(웃음)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이제 두 가지 질문이 남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하나님께서 부르실 날을 기억하며 살아야 할텐데요.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에 꼭 이것만큼은 이루고 싶다는 소망이 있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 특별히 소망은 없고요.(웃음) 그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면, 우리 시대에 노인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70, 80세가 되면 교회에서 은퇴한 사람들은 교회 일에 손 떼게 하는 경향이 많잖아요. 저는 은퇴이후에도 노인들과 함께 성경을 같이 읽고, 신학 서적도 같이 공부 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80세 이후라도 건강이 허락이 된다면 왕성하게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젊은 나이에 공부하는 것과 비교해서 기발함이나 참신함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원숙함에 있어서는 더 농익은 깊이가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가끔 진짜 공부는 65세부터라고 말하곤 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고 프로처럼 해 보는 것이죠. 노인들이 집이나 노인정에만 있지 말고 공부하면서 작은 논문이라도 쓸 수 있도록 한다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나이든다는 것을 참 감사하게 생각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녹음 이후에 이 물음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인 소망을 전해 주셨는데, 교훈이 되는 것 같아서 추가로 적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실로암 교회에서 은퇴를 하게 되면, 은퇴 목사라는 타이틀 때문에 교회를 떠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이후의 일은 교회의 결정에 따라야 하겠지만, 저는 일반 성도로서 섬기고 싶어요. 또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면 장로나 집사의 직분을 가지고 힘닿는데까지 섬기고 싶습니다. 과거에 목사라고 해서 장로나 집사가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직분은 은사에 따라 부름을 받는 것이므로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럽 개혁교회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목사직만큼이나 장로나 집사의 사역도 중요합니다. 은사에 따라 무슨 일이든지 교회를 위하여 섬길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목사님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말씀입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근래 들어 온오프라인에 구애받지 않고 개혁신앙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고, 또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회도 이러한 관심의 열매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개혁신앙을 알아 가기를 소망하는 분들을 위한 당부와 교훈을 마지막으로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제가 그렇게 말할만한 형편도 자격도 안될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한 마디 한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평신도라는 말을 써 본다면요. 좋은 의미로 목사보다 더 겸손하고, 더 말씀에 대한 이해가 많아서 목사를 부끄럽게 하는 평신도가 되기를 바라고요.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말씀과 신학에 대해 잘 공부를 해서 겸손하고 올바른 지식을 갖추었을 때 목사님들에게 도전이 되는 거죠. 그리고 우리 회원들(SDG 개혁신앙연구회 소속 회원) 가운데 목사님이 있다면 현재 교수나 박사보다 더 겸손하고 더 풍성한 신학적 지식이 있어서 그분들에게 좋은 도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건강한 교회는 목사라고 자기 맘대로 하지 못하고, 교수라고 마음대로 얘기하지 못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건전한 건실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목사님도 두 딸이 있지만, 자녀가 부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게 부모의 진심이잖아요. 저는 목사들도 그런 부모의 심정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교인들이 자신보다 더 성숙하고 더 나은 교인이 되도록 말이나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애를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신학교 교수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더 탁월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일반 성도나 목회자는 실제로 참된 목사들과 참된 신학교수들이 바라는 상에 응하는 모습으로 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구요. 저는 우리 SDG에 속한 여러 회원들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개혁주의를 공부해 보니 현실과 맞지 않아서 갈등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나 그럴 때에 더욱 겸손하면서도 실제로 말씀에 대한 이해가 목사보다 더 낫기를 바래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 교인들이 저보다 낫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렇게 되긴 쉽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가만히 안 있을 거니까요. 그렇지만은 그럴수록 우리 교인들은 더 열심히 따라올 수 있고요. 그런 것처럼 SDG가 실제로 한국 교회에 구체적으로 유익을 끼치게 되기를 바라고요. 우리 시대 속에서 태어났기에 그러한 임무를 잘 감당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습니다. 



03db0ba2414d4bf7b0a5c40afe23dc9d.png : 감사합니다. 오늘 장시간 진솔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되는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혼자 듣기에는 너무 아쉽고 아까운 말씀들입니다. 아마 나중에 이 인터뷰를 듣는 분들은 저와 같은 느낌을 갖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목사님과의 대화는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큰 도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교회와 성도가 참 많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앞으로 그 필요를 더욱 넉넉하게 채우며, 필요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힘이 되며, 그 교회와 성도들과 더불어 주의 일을 이루어가는 목사님과 실로암교회의 사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시고 진솔한 말씀과 귀한 교훈을 전해 주신 목사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세요!


2012.12.11. 이광호 목사님 서재에서


※ 인터뷰 녹음 파일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 본 인터뷰의 권리는 SDG 개혁신앙연구회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