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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보 칼럼
2015.01.08 10:01

교회는 역사 앞에 책임져야

S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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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기독교 개혁신보의 허락하에 게재하는 것으로 모든 권리는 기독교 개혁신보에 있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자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뜻 자체가 죄의 시작이라면, 인간이 그런 죄를 짓는 일은 하나님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야기되지 않고 하나님의 의지의 필연성에 의해서 야기된 것으로 이미 일종의 하나님의 형벌의 시작이다. 

  그런 형벌을 받는 자들에게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내적으로 은밀히 증거하시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지식이 깊어질수록 그 증거를 크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을 만들어 겨우 그것으로 위장하고 변명하며 급기야 이웃을 해하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는 것은 형벌을 넘어서 재앙이다. 


하나님 떠나는 것이 ‘죄’


  인류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먹고사는 자로 소명을 받은 것을 잊고 자신의 뜻 자체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살아가는 방식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할 때 거기에는 진정한 평화나 복이 없다. 강제로 아브라함의 부르심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생활에서 겨우 회복케 하신 그런 복된 삶의 방식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현장인 가나안 전 역사는 복과 저주의 갈림길들이 아니었고 적은 굴곡이 있을 뿐 계속된 저주들의 바닥까지 가는 역사였다. 

  그런 죄인으로서의 역사는 홀로된 역사이지만 이미 주어진 은혜의 내용을 빼앗지 않고 거기에 은총을 더하시는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역사가 오히려 그들에게 선이 되게 하시는 역사였다. 스스로 유리하는 자가 된 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보존의 표가 주어졌어도 여전히 아직 스스로 자신의 죄를 위장하는 문화와 문명의 역사는 그 자체가 복과 저주의 혼합물이다. 

  아무리 방어용이라고 해도 핵무기나 대량살상무기 개발 자체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해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이상 먼저 이웃에게보다 개발 당사자에게 근원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개발하는 동안 직접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평화로 위장하기도 하며 그 무기가 크면 클수록 경우에 따라서 재래식 무기에 의해서까지 위장해야만 하는 그렇게 치밀한 정신적 활동 자체가 이미 받은 큰 재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대량살상무기로 위협하든 칼로 위협하든 법으로 위협하든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한 조금도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대적들이 쏘는 것은 겨우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신 관원들의 사명은 역사의 중심에 관한 사명은 갖지 못해도 교회의 사명보다 더 보편적이고 더 넓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권력과 칼이 주어졌을 때 그 책임이 더 큰 것이다. 

  영원한 죽음은 하나님의 은총이 없는 곳에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면 죽음도 없다. 그러나 다만 인간의 구원이 인간으로부터 어떤 것도 고려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에만 그 원인이 있다고 해서 실제적으로 마지막 죄로부터 회개하기까지 그 동안 죄를 마음대로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과 영원한 나라에서 가장 분명히 보존되어 있는 자신의 그 정체성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자신과 관련된 과거에 대한 어떤 정보들은 그 자체로 가장 큰 부끄럼으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이시기를 원하시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날 영광의 차이가 거기에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가장 불쌍한 자들 안에 죄를 짓는 당사자도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 안에 안식 있어


  그렇다면 선량한 이웃들과 자신이 죄인인줄 모르고 죄를 짓는 당사자에게 선이 되게 하는 일은 헤아릴 수 없는 힘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생명 자체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죄의 행위 자체는 단호히 징벌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아주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조차도 우리 자신 안에 깊은 죄의 뿌리가 그 부패 현상으로 세상에 늘 나타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사실 타인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들이 아니고 실제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고 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 먼저 탓하기 전에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사는 나그네의 삶은 그 만큼 고달픈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모두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쉼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곳에서 쉼을 얻으려고 했을 때 거기에서부터 진정한 쉼은 없어질 것이다. 죽음은 가는 길을 멈추는 곳이면서 영원한 쉼으로 가는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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