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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보 칼럼
2015.03.24 11:46

장로교 뿌리부터 연구하자

S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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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기독교 개혁신보의 허락하에 게재하는 것으로 모든 권리는 기독교 개혁신보에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1907년 평양 대 부흥을 기념하기를 원한다면, 세계교회 앞에 어거스틴이 도달하지 못하고 루터나 칼빈, 어떤 개혁교회도 이루지 못한 일을 발견하고 그런 일을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리기를 바란다. 


겉으로만 화려한 부흥과 개혁


  부끄럽게도 개혁신학을 내세우는 곳에 그 역사적 자료들을 모아 기념하는 기념관 하나도 없고 원 자료들을 모으는 일도 해 본 적이 없다. 한국장로교회는 아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목회자들의 자료들조차도 모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일을 하는 자들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너무 슬픈 일이다. 

  세계교회사에 있어서 어떤 지역이나 시대에서도 하지 못한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땅에 내리신 선물이다. 지금의 서방교회나 동방교회는 성경에서 보여준 순수한 교회로부터 떠난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나 교황청과 영국 성공회 사이의 검은 

정치적 싸움, 유대 테러주의자들과 이슬람 테러주의자들 사이의 링 위에서 칼싸움, 기독교 근본주의와 다아윈주의 사이의 싸움도 아닌 싸움을 주선하고 누가 판정패를 당하였는지를 구경하거나 그 싸움들에 휘말러 들어가면서 정작 해야 할 시대적 과업을 하지 못해도 똑같은 실패자로 보일 수밖에 없다. 

  록펠러 가문, 카네기 가문, 포드 가문이 십일조를 잘 내고 모건 가문이 헌금을 많이 냈다고 해서 그렇게 부유해진 교회가 그들의 경제적 착취를 비판 없이 지나간 것이 미국교회의 몰락의 보이지 않은 모습이라면, 그것을 먼 산 보듯이 미국의 예로만 볼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교회는 지금 속성에 있어서 가감이 없고 구원에 있어서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 외에 어떤 것도 사려하지 않은 그 하나님을 소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기독교가 역사 앞에 이미 이기는 싸움을 하면서도 너무 초라하게 시대의 흐름이나 정신과 같은 허무한 가상현실들에 갇혀 자신의 진정한 일을 하지 못하고 시간만을 흘러보내고 있다면, 어떻게 성경의 기본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세계 안의 인종적, 정치적, 경제적 갈등 등 사람들 사이에 수많은 갈등들을 아브라함도 죽고 이삭도 죽고 야곱도 죽었지만 모세에게 나타난 그 하나님 앞에 다 묻혀 버릴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을 우선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모세를 부르신 그 하나님이 평양의 대 부흥을 통하여 그의 백성들을 부르신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시라면, 진정 그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목표를 두지 않고 그 부흥 자체나 그 시대에 대한 반응, 그 백성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은 교회가 무엇이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른 행위들이다. 목회자들은 목회자들대로, 교회 신자들은 교회 신자들대로 지금 그런 하나님 앞에 어떤 자로 서 있어야 할 것인지를 전혀 모르고 자신들을 위해서만 잔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 물어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숨기기를 원치 않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그의 자손들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이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강대한 나라가 되어 세계가 그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될 내용(창 18:17-19)이 바로 같은 길을 간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계 속에 그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는 자는 누구나 그런 뜻을 가진 같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것이요 이스라엘 안에 출애굽의 기적 역사와 그들의 가나안의 모든 생활이란 그 같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그들로 하여금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 양식을 먹는 일을 위해 아담이 창조된 이래 인류는 그 길을 가는데 실패하였고 그리고 여전히 같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신 아브라함이래 이스라엘 가운데 실패한 증거들만이 인류 앞에 남아 있는데도, 그런 역사의 끝까지 선포한 같은 소리를 교회가 아직도 듣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에게 왜 세계가 있고 생명과 복이 있으며 사망과 악이 있는지를 아직도 교회가 모르고 있다면, 어떻게 그것이 회개이고 부흥인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지극히 큰 상급은 세계교회도 아니고 민족의 교회도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일 뿐이다. 그런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로 취득하였다면 모든 문명과 문화, 역사들은 그 역할을 다 한 것이고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의 땅과 경제적 가치, 세계 앞에 보이고자 하는 모든 가치들은 그런 목적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 땅의 성도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 같은 하나님과 친히 모든 역사를 통해서 행하신 그 말씀 앞에 자신이 친히 아담을 대표하여 아담이래 모두 실패한 인류에게 목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과 그 모든 속성들을 모든 피조성으로부터 쟁취해야 할 승리의 취득 내용들을 은택으로 받는 것이다. 그런 역사들만을 세계와 공유하기 위해서 선교사들을 보내고 있고 그들을 보내는 땅에도 여전히 설교자들이 있으며 성도들이 있다. 보내는 곳은 망하고 있는데 보낸 곳은 새롭게 되는 그런 것은 없다. 버릴 것은 어디에서나 똑같다. 

  우주의 창조란 짧은 기적이지만 그 후의 역사들이나 섭리들은 긴 시간의 기적일 뿐이다. 우주를 짧은 시간에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면 그 창조 이후 같은 말씀을 긴 시간 동안 이루고 있고 지키고 계실 뿐이다. 지금도 인간의 평범한 양식인 하나님의 뜻은 창조를 유래케 한 같은 말씀보다 창조 이후의 목적과 종결에 관한 하나님의 깊은 뜻과 말씀으로 선포된 것들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긴 역사도 말씀 창조의 연속


  실로 창조의 신비에 대해서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영역이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양식으로서 그 말씀들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이겠는가? 세계교회가 지나간 역사를 다시 거꾸로 올라가기를 원한다면 그런 뜻을 나타내신 그 하나님을 지금 다시 발견하고 그 하나님에게로만 돌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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