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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보 칼럼
2015.02.27 09:26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우리의 인식

S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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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기독교 개혁신보의 허락하에 게재하는 것으로 모든 권리는 기독교 개혁신보에 있습니다.



  자연의 대상들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자연을 아름답게 볼 뿐이라고 했을 때 자연 자체보다 우리 인간이 그렇게 아름답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만이 아름답게 보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우리만이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자연의 모든 대상들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창조된 자연계만 볼 뿐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모습은 현재의 역사에 대한 것이 아니고 모두 과거의 역사에 대한 것이다. 우주의 동시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아마 적어도 125억 년 내지 127억 년 전의 질서로부터 그 전에 도달한 모든 우주 질서의 정보에 이르기까지 밤하늘에서 우리는 한꺼번에 그것들을 관찰하고 있다. 물론 가장 오래된 별을 관찰하는 것이나 관찰자로부터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별을 관찰하는 것은 같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의식에 첫 지향적 초점이 형성하기 전 300밀리 초 전에 대상과 관련된 뇌 활동이 진행되고 있음을 고려하여 현재를 더 자세히 쪼개어 관찰하면 할수록 의식의 초점에 의해서 처음 발견한 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관찰하는 것이란 과거를 향하여 가는 행위들에 속한다. 

  이미 과거를 보고 있는 관찰 행위 중에서 가장 가까운 현재는 망막에서 이루어지는 정보들이다. 우주가 지금의 가속도로 팽창한 이래 계속 차가워져서 현재 정도의 차가운 공간에서 이동하는 빛의 운동들이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정보 중에서 가장 빠른 정보들이다. 

  공기 중에 운동하는 빛의 파장 운동 속에서 겹치고 포개진 운동 중에 우리 주변에 있는 대상들의 표면 입자들의 구조로 말미암아 변형된 운동이 공간 속에 떠돌아다니다가 우리의 망막 속에서 각종 색깔들의 정보로 분할화 되었을 때가 가장 현재에 가까운 과거의 정보들이다. 그와 같은 첫 정보들이 뇌의 시상피질에 뿌려주기까지 정보들의 변형들은 그 보다 현재로부터 먼 과거의 정보들이다. 그러나 그 정보들이 대상들의 실재적인 정보들인지 아닌지 아무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자연에 대해서 우리는 스스로 독백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관찰하는 것이나 보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대화적이고 사회적이라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연은 우리가 그렇게 아름답게 독백하여 보도록 창조되었는가? 아니다. 성경에서 자연은 사람이 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고 한다. 우주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보시도록 창조되었다. 아마 우리가 자연을 아름답게 독백하여 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방식과 질서 중에서 특별히 창조된 방식과 질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로부터 계시된 모든 것부터 이미 우리의 선이나 행복을 위해서 계시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주시는 은혜의 기막힌 방식이기도 하다. 

  우주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가 세계의 본래 소유주라는 뜻이다. 반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지향성 자체의 오류와 판명성의 오류에 따라 환원하여 보거나 관찰하는 피조물들에게 창조자나 그 소유자가 보이지도 않고 관찰될 수 없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찰자가 무한히 큰 거시세계 밖에 나와도 누가 창조하였는지가 관찰되지 않고 무한히 미시세계로 들어가도 그 창조자가 보이지 않은 방식으로 창조하셨다. 인간이 호기심을 가지고 극 거시세계와 극 미시세계로 자리를 옮겨 그 원인들을 관찰하고자 하면 할수록 혼돈이 커 갈 뿐이다. 기본적으로는 모든 정보들이 수집이 된다고 해도 우리 뇌가 인식하는 정보의 방식으로는 축약이 될 수 없다고 해야 더 옳다. 

  우주와 세계의 본질이 우리 뇌의 적정 선에 맞는 정보로 축약되는 그런 기적이란 모든 시간을 통해서 동일하게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종종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방식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는 표현으로 번역하려고 한다. 그러나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개념에는 창조자 자신과 창조자 자신의 인격적인 성격이 나타나지 않는다. 때문에 그렇게 번역할 수 없다. 

  오히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냥 말씀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시매 그것들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과 그 모든 속성들을 보존하는 표현들로 그 창조를 설명하시기를 원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그런 정지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아직 충분히 모르고있다. 

  우주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어느 위치나 어느 시간에 있든 관찰할 수 없다. 이것은 관찰자의 위치에 상관없이 항상 모든 방향에서 같은 절대 속도로 움직이는 어떤 물질 상태로부터 정지점이 생기는 정보의 특별성이다. 우주의 발전에 있어서 정지점의 대표적 아이디어인 블랙 홀의 개념도 그런 정지점의 개념과 비교될 수 없다. 


말씀 창조 경이로워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피조물의 모든 정지점들은 ‘명하시매 존재하는’ 정지점들인 이상, 그런 아이디어를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으로 섬기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정지점의 창조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목적인 죄로부터 구원의 역사보다 쉽다(마 9:5)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교회가 가르치는 실재성과 엄중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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