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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보 칼럼
2015.02.20 23:00

기억해야 할 칼빈의 순교 신학

S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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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기독교 개혁신보의 허락하에 게재하는 것으로 모든 권리는 기독교 개혁신보에 있습니다.




  칼빈의 신학은 순교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1529년 10월 종교개혁자들 안에서 최종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성만찬 교리와 그에 따른 기독론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 칼빈은 결과적으로 루터보다 쯔빙글리와 오클람파디우스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기독론에서 루터와 결별한 칼빈


  그때 칼빈은 경건한 다른 개혁자들(부쪄, 페트루스 마르티르, 불링거, 요하킴 아 라스코)에 의해서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인 견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였지만 더 크게는 순교를 당한 그의 믿음의 형제들의 신학적 입장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칼빈이 쓴 파리대학 학장인 니콜라우스 콥의 연설문 사건으로 인하여 바울처럼 창문을 통해서 파리를 빠져나가 파리 남쪽인 오를리앙, 뚜르 등의 도시로 피신 생활을 하면서 칼빈이 쁘와띠에에 와서 조그만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얻은 제자들 중에 화형을 당하는 순교 사건이 있었다. 

  칼빈이 다시 북쪽으로 올라와 자신의 고향과 파리를 중심으로 그를 따랐던 형제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 유명한 파리벽보사건으로 인하여 칼빈이 잠시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는 동안 무참하게 희생되는 순교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들을 통해서 급진주의자들과 함께 오해되어 무고하게 순교를 당한 형제들을 위해서 펜을 든 것이 그의 기독교 강요라고 말할 수 있다. 항상 이런 순교자들의 수를 세고 있었던 칼빈이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1525년 이전의 루터나 멜랑히톤의 순수한 개혁 입장들에 대해서 존중하고 지지하였지만, 그런 순교자들을 생각한 칼빈의 예리한 펜 끝은 이들의 입장과 몇 가지 근본적인 입장들에 있어서 많이 달랐다. 

  특별히 성만찬에 있어서 칼빈은 파리벽보사건의 원인인 그 벽보 내용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런 포기할 수 없는 칼빈의 순교 신학이 다른 개혁자들의 신학과 차별화 되는 신학이 되었고 이런 신학이 개혁신학의 독특성이 되었다. 에드워드 6세 시대의 영국 개혁자들의 순교 신학이 아직 미달된 칼빈의 신학으로 나아감에 있어 좀더 나은 종교개혁에 오히려 방해가 된 시점은 기독론 문제로 칼빈과 싸우고 있었던 루터주의자들의 보호아래 그들이 피신하여 안주하였을 때였다. 당시 그와 같은 안주에 빠져있던 사람들 중에서 칼빈의 순수한 신학으로 가능한 가깝게 가고자 한 사람들이 제네바 성경번역이나 제네바에 있어서 영국 피난민교회의 신학, 그리고 죤 낙스의 종교개혁의 신학을 산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학으로부터 시작한 스코틀란드와 영국에서의 종교개혁도 좀더 제네바의 신학에 가깝게 가기 위해서는 1570년대 토마스 카아트라이트나 앤드류 멜빌의 개혁운동이 있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거기에서 시작된 기나긴 싸움은 마침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나올 때 절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회중교회의 분열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1662년 8월 24일을 기점으로 더 이상 회복할 기력도 없이 역사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루터 사후 루터주의자들 안에서 생긴 많은 논쟁점들은 끝까지 칼빈의 신학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만찬의 떡에 그리스도의 몸의 절대적 편재 혹은 의지에 의한 상대적 편재를 거절하고 어거스틴과 풀겐티우스의 단순한 견해에 의존한 순교 신학에 그는 계속 머물렀다. 두 본성의 신적 속성들의 교류를 믿었으나 인성의 신성화나 신성의 인성화를 믿지 않았고, 단순히 피조물에 대한 일반 역사처럼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의 영적인 임재만을 믿은 것이 아니라 전 그리스도(totus Christus)는 땅에도 계실 수 있으나 그리스도의 전체(totum Christi)는 하늘에 있다고 믿었다. 

  멜랑히톤과 함께 하는 루터주의자들 안에서 발전된 ① 하나님의 앞서오는 은혜를 타락한 인간이 받고 거절할 수 있는 능력과 회심에 있어서 약간의 어떤 역할을 강조한 소위 페핑거주의자들의 견해 ② 선행들은 공로의 필연성에 의해서는 아니지만 하나님에 의해서 명령하신 빚으로서의 필연성에 의해서 혹은 믿음과 연결된 연결의 필연성에 의해서 구원에 이르는데 선행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한 메이죠주의자들의 견해 ③ 그 반대로 원죄를 자연인의 실체로 생각하고 타락한 자의 형상을 사탄의 형상으로 보는 플라키우스주의자들의 견해 ④ 율법은 회개나 회심과 관계없다는 반 율법주의자들의 견해들은 처음부터 칼빈의 신학에서는 들어 올 수 없었다. 칼빈의 순교 신학이 반영된 1536년 기독교 강요 초판에서부터 미래에 있을 그런 견해들이 거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학적 타협은 있을 수 없어 


  불행하게도 개혁교회 안에서 가장 엄밀한 신학적 입장을 걸어가야 할 한국의 장로교회는 그런 순교의 신학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 싸우지 않는 순간, 그 진리를 양보하는 순간부터 긴 역사를 통해서 세계는 어둡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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