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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보 칼럼
2015.01.20 11:00

쾌락이 가장 무서운 사탄의 도구

S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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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기독교 개혁신보의 허락하에 게재하는 것으로 모든 권리는 기독교 개혁신보에 있습니다.



  기독교 진리와 관계해서 근대로부터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학자들에 의해서 가장 크게 파괴된 것이 신약과 구약의 실체의 통일성에 관한 진리이다. 신구약의 실체의 통일성이란 개념은 처음 크리소스토무스에 의해서 사용된 개념이지만, 거슬러 올라가 마르시온과 같은 초대 기독교의 영지주의 이단들로부터 참된 기독교 진리를 보호하고 변증하는 초대 교부들의 근본적인 개념이었다. 

  순교자 저스틴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대표 저서인 이단론에 관한 글이 동시대적인 헬라어 파피루스 조각으로 지금도 남아 있는 이레니우스의 글들은 물론 터툴리안의 많은 글들은 그런 개념 없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거스틴이 열거한 이단들의 목록 중에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단들이 대부분이지만, 더 전체적으로 보면 신구약의 실체의 통일성에 대한 오해로 생긴 이단들이다. 


언약의 통일성 오해로 이단 발생해


  오늘날 신약과 구약이란 이름을 성경에 붙이게 된 배경이 되는 언약이란 개념이 종교개혁시대에 새롭게 발견이 되었을 때, 거기에 신구약 실체의 통일성에 대한 이해가 깊게 관계되어 있다. 루터와 다른 개혁자들(쯔빙글리와 오클람파디우스 등) 사이의 결별도 단지 성경해석의 차이나 기독론에 있어서 차이가 아니라 신구약의 실체 통일성에 대한 실재적 내용에 있어서 차이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젊은 개혁자들인 부쪄나 칼빈의 종교개혁 정신도 1520년대 이전의 초기 순수한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들을 루터보다 쯔빙글리 편에 두는 것은 젊은 루터가 고백한 바 있는 적어도 갈라디아서 가르침대로 믿음 위에 율법이 기초하고 율법은 영적으로 복음과 동일하며 신구약 백성들 사이의 택자들에 있어서 하나라는 범 카톨릭 교회의 원리를 후기에 버린 데도 중요한 이유가 있다. 

  루터가 신구약 실체의 통일성에 따라서 땅에 계셨던 성육신 밖에 전 그리스도는 하늘에도 계신다는 어거스틴과 풀겐티우스의 입장을 따랐다면 루터교회와 개혁교회는 역사적으로 분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쯔빙글리는 신구약 사이에 사실 자체나 총화와 관계된 것(re ipsa vel quod ad summa pertinet)의 동일성을 주장하듯이 칼빈도 갈라디아서 주석과 예레미야 주석에서 그런 신구약의 실체 통일성을 교리의 통일성, 즉 삼위일체 하나님과 구원의 방식의 통일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후기 루터에 와서 율법과 복음이라는 두 원리에 의해서 신구약을 분리해 버린 것이 현대사에 있어서 독일 역사의 불행과 제2차 세계대전 발원의 종교적 배경이다. 이런 뿌리를 모르면, 제2차 세계대전과 유엔,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서방세계와 이슬람 세계 사이의 갈등의 근본 뿌리를 모른 것이다. 

  남북한 갈등이 민족의 뜻과 달리 직접적으로 냉전시대가 시작되는 국제 간의 갈등의 희생으로 말미암았다면, 그런 냉전 시대의 도래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원과 그 발전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이런 종교적 뿌리가 신흥 열강들의 식민지화의 패권주의와 결합하여 한반도에 계속 폐해를 준 것에 불과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독일이 그런 뿌리가 갖는 폐해에 대해서 세계 앞에 철저히 반성하듯이 한반도 주변국가들도 한반도에 자신들이 미친 요소들에 대해서 철저히 반성하여 폭력으로 해결하기 전에 책임이 있는 대화에 나서 진지하게 해결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 


  칼빈이 일찍이 1536년 기독교 강요 초판에서부터 제안하였듯이, 이미 출교된 자들에게나 여호와의 이름을 고집하거나 여호와 이름 대신 알라신으로 바꾸기를 원하는 자이든 종교의 적들에 대해서도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권고와 가르침으로든 자비와 온화함으로든 혹은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를 드림으로 하든 보다 덕스러운 삶으로 돌아오게 하고 교회의 교제와 일치에로 되돌아오도록 노력해야 하고, 불과 물과 일상 요소들의 사용을 금지시키거나 그들의 인간성의 모든 의무들을 부인하며 그들을 칼과 무기로 핍박하는 방법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권한 바 있다. 

  관원들도 원수 즉 무장한 도적에 대항하여 무기를 취해야만 할 때도 극히 필연적으로(summa necessitate) 사용해야 할 경우가 아닌 한, 무력에 호소하기 전에 평화를 구하기 위한 분명히 온갖 수단을 시도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구원은 그 인간의 소원이나 그 달려가고 있는 삶의 내용이나 선과 악도 고려하지 않은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근거한다. 그래서 구원받을 자가 누구인지를 자신과 하나님 자신 외에는 다른 자들이 알지 못하도록 하셨다. 북한에 있는 모든 자들도 여기에 예외가 되지 않는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북한의 정치체제에서 많을지 남한의 민주주의 체제에 많을지 아무도 모른다. 사탄은 폭력보다 쾌락이 더 큰 무기이기 때문이다. 정치체제와 상관없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먹고사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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