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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보 칼럼
2014.12.18 06:33

나눔의 미학에 담긴 구속의 의미

S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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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기독교 개혁신보의 허락하에 게재하는 것으로 모든 권리는 기독교 개혁신보에 있습니다.




  매년 장마철과 여름철이 되면 인간이 남에게 주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은 편리를 위해서 산을 깎고 도로를 만들며 자기 소유를 확대하며 본래 인간에게 혼돈인 자연을 인간에게 좋은 모양으로 다시 개조하려고 한다. 


자연과 조화 이루는 개발되어야


  이때 자연에 숨어 있는 에너지를 뽑아 쓰레기로 바꾸어 자연에게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개발하며 인간적 문명을 다시 창조하는 시도에 대해서 어떤 시간차를 두고 자연이 인간에게 돌려주는 방식은 스스로 엔트로피를 감소하는 방향이다. 인간은 그것을 재난으로 생각하나 긴 시간으로 보면 스스로 저지른 인재로 생각할 것이다. 물만 보더라도 그 자체로 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하나님의 선물은 없을 정도다. 보기에도 아름답고 만져도 그렇게 부드러운 것도 없으며 그 안에 푹 담겨 있어도 좋으며 우리에게 온갖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인간이 그런 자연의 질서에 잘 순응하여 살지 못하고 그의 욕심과 허영과 함께 인간 사이에 돈을 주고받는 식으로 지혜롭지 못하게 자연에게 돌려 줄 때, 지구의 공기는 비정상적으로 비를 뿌리고 그로 인하여 많은 물을 먹은 산은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요 그 힘을 인간이 철골과 콘크리트로 쉽게 막을 수 없게 된다. 

  자연 자체가 재난일 수 없다. 그것은 가장 근원적이고 먼 원인이신 하나님께서 보다 낮은 여러 원인들을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하다. 칼빈의 말대로 하나님의 선이나 진노 혹은 의가 명확히 비추어지는 거울에 불과하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최초의 죄처럼 자연에 더위먹이고 그 다음 말을 할 줄 모르고 화낼 줄 모르는 그 자연과 인간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셈이다. 모두 아파트를 버리고 자연으로 들어가며 자동차를 폐기 처분하고 걸어 다니라는 것이 아니다. 도로를 내더라도 지구 온난화로 비를 뿌리는 양과 속도를 고려하여 자연의 순환을 역행하는 인간의 편리만큼 그런 비를 흡수할 수 있는 과학적 기술을 가지고 국토를 개발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우리에게 돌려주는 자연의 힘을 흡수할 말한 더 좋은 자연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산을 깎든 굴을 파든 온 산이 그런 물을 먹었을 때 서로 지형으로 나누는 힘을 지탱하는 힘을 계산하여 자연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예술과 문화, 문명이 기반을 두고 있는 지향성 자체의 오류와 판명성의 오류를 절대화시키지 말고 자연 자체의 혼돈에 대해서 순응하면서 겸허한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을 때 더 아름다운 것이다. 인간이 첨단과학을 지향하고 있다면 자연 자체는 인간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신 전혀 상상할 수 없었고 아직까지 그 신비를 풀 수 없는 첨단과학이다. 그 처음과 끝을 고스란히 보존해야 할 첨단과학이다. 그것도 받는 자가 그 주는 자를 알 수 없도록 명하여 주신 선물이다. 주는 모든 자는 그런 하나님이 주시는 방식을 모방하여 주어야 할 것이지만, 모든 지혜와 노력을 가지지 않으면 그렇게 줄 수 없는 것이 또한 인간의 한계이다. 인간이 줄 때는 반드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보는 가운데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줄 수 있는 방식이 있다.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만 감사하면서 주면 되는 것이다. 이유가 있어서 주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어서 주거나 자존심 때문에 주는 모양이 나타나지 않으면 된다. 인간이 주는 모든 방식은 돈을 주고받는 방식이 그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인간의 마음이 선하기 때문에 주는 것이어야 할 것이지만, 인간은 스스로 부패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모범에 따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주지 않으면 그렇게 줄 수 없다. 

  그러면 악인에게도 그렇게 주어야 하는가를 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악인에게도 그렇게 주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주면, 주는 것이 다시 악으로 자신에게 돌아 올 때 너무나 억울할 수 있지만 입술을 깨물고 주라는 의미일 것이다. 악인이 악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은 고작 60년이요 80년이다. 칼빈의 유명한 말대로 지금의 죄들은 전에 범한 죄들에 대해 지불한 하나님의 형벌들(peccata esse poenas quas Deus superioribus peccatis rependit)이라고 한다면, 태초로부터 인류에게 전달된 진리를 거부한 그 역사만큼 그 역사들이 이미 형벌을 받은 것이요 악인들은 그 사는 동안 악을 행한 것이 바로 그 형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나 그리스도인의 부활신앙은 바로 그런 주는 자가 억울하지 않다는 증거로서 주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을 주고자 하여 줄 때도 죄인인 인간에게 그 주는 방식에 있어서 흠이 있게 마련이다. 


나누는 자가 진정한 자유 누려 


  오히려 자랑하지 않는 것, 겸손하는 것, 욕심을 버리며 남을 배려하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천상의 그리스도만을 닮아 가는 것 자체가 남에게 주고 있는 가장 쉽고 가장 귀한 것을 주는 어떤 방식임을 더 많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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