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조회 수 1399 추천 수 0 댓글 0

한국장로회 독노회와 12신조,

어제 <SDG 신학강좌>에서 강의한 주제였다.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 많은 주제이다.

시간상 우선 한 가지 생각거리를 말하면, 한국장로회 독노회와 한국교회의 연합에 관한 문제이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초기 한국교회에서는 초교파적 연합운동은 말 그대로 대세였다. 한국에 입국한 초기 선교사들은 복음주의 연합운동의 기수들이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미북장로회 소속 언더우드 선교사는 학생때부터 '요란한 감리교도(the Roaring Methodis)라고 불렸을 뿐만 아니라, 미북장로교 선교부 총무 브라운으로부터 '초파주의의 열렬한 추종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그는 1905년에 조직된 '복음주의 선교공의회'라고 불리는 '장로교, 감리교 연합 공회'를 이끄는 실질적인 리더였다.


당시 1903년 원산 대부흥 운동을 기점으로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운동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였다. 장감연합 공회는 이러한 연합운동이 가져다 준 결실이었다. 장감연합 공회 설립으로 연합운동의 기틀을 마련한 양대교단 선교사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것은 한국 땅에 장로교와 감리교로 구성된 하나의 연합교회(One Union Church)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능한 한, 이 교회는 양 교단의 신학적, 교리적 색체를 완전히 제거한 신학과 교리의 차이를 뛰어넘는 하나의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이 교회를 '한국 그리스도 교회'(The Church of Christ in Korea)라고 명명하였다.


하지만 신학없는 교회라는 비난이 두려웠던지 1907년 공의회 위원회에서 일종의 '조화된 교리'(Harmonization of Doctrine)를 만장일치로 체결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캐나다 연합교회에서 1903년 미국 교회에서 수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받아 갓 채택된 신조였다. 장로교와 감리교의 엄연한 신학적, 교리적, 역사적 차이를 묵살하고 하나의 연합교회를 세우는데 이보다 더 적실하고 현명한 판단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거침 없이 진행될 것 같았던 한국의 단일 교회 설립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놀랍게도 감리교회의 복잡한 내부 사정이 한 가지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장로교 선교부 안에서 반론이 제기되었다. 미남장로교회가 나중에 불거질 수 있는 교회 정체성 문제를 이유로 태클을 건 것이다. 심지어 장감연합 운동에 열렬히 투신하였던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모국 선교부로부터 '아직은 시기상조이니 유안(留案)하라'는 전갈이 날아왔다.


신학과 교리의 표준과 상관없이 부흥과 연합이라는 미명 하에 단일 교회 설립에 올인한 장감연합 공회가 멘붕 상태에 빠진 사이, 평양 장로회 신학교에서 배출한 첫번째 졸업생들에게 안수를 주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로 4개 장로교(미남북장로회, 호주 장로회, 캐나다 장로회) 선교부는 정식 노회 설립을 추진하게 된다.


독노회.gif

 최초의 한국 장로교 독노회에 참석한 총대들


그로 인해, 1907917,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한국 교회 역사상, 그리고 장로교회 역사상 최초의 노회가 개최된다. 바로 독노회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이다. 그런데 강의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대부분의 교회 역사학자들은 장로교의 독노회 설립 의의보다는 장감연합운동이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의 교회로 결실 맺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한다. 보수적인 교회사학자들도 초록이 동색이다.


과연 장감연합운동으로 단일 교회를 세우지 못한 것이 장로회 독노회를 설립한 일보다 더 의미있게 취급되어야 하는 것인가?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한국 교회의 초기 선교적 상황이라는 특수성과 연합운동을 주도한 선교사들의 순수한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장로교와 감리교 간에 엄연한 신학적, 교리적, 역사적 차이가 상존하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분명한 확인 작업과 사려 깊은 논의 없이 한국 땅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고자 한 것은 이 땅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개혁파 장로 교회와 장로회 정치가 뿌리내리는데 근본적으로 장애적 요소가 되었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선교는 가시적인 열심과 결과로만 승패나는 것이 아니다. 후대에 어떤 형태의 신앙적 열매가 열릴 것인지를 신중하게 숙고하지 않는 선교 사역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을 가져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초창기 한국 장로교회의 동기적 순수성과 열심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목이 터져라 '어게인 1907'을 외치는데도 한국 장로교회의 실상이 이러하거늘, 만약 장감연합동의 결실로 장로교와 감리교가 혼합된 교회가 한국을 대표하는 단일 교회로서 우리 곁에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자면, 송골이 묘연해진다.


비록 최초의 장로교 노회가 완숙한 장로교적 정신 위에 세워졌다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오순절적 부흥주의와 초교파적 연합주의가 득세한 선교적 정황 속에서 장감 단일 교회의 설립이 무산된 반면, 장로교의 독자적인 노회가 설립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 나는 한국 장로교회를 향한 주님의 섭리의 위대함과 깊음을 절감하며, 역사의 주인이신 그분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고자 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자신의 포인트를 더 쉽게 확인하세요! 8 file SDG 2012.08.20 26873
공지 '베스트 추천 글' 도입 안내 4 file SDG 2012.07.11 28095
공지 오랜만에 회원님들께 보내는 편지(필독해 주세요^^) 27 주나그네 2012.02.16 26337
744 뒷북 7 나다나엘 2014.10.14 655
» 한국장로교 역사를 돌아보며(독노회와 연합) file 주나그네 2014.10.11 1399
742 불변의 명제 주나그네 2014.10.08 851
741 이승구 교수님의 글: "성지순례"라는 용어 사용해도 될까요? 1 등불 2014.10.07 887
740 성범죄와 목사 주나그네 2014.09.30 1257
739 총회장의 직무와 교회 개혁 file 주나그네 2014.09.30 730
738 Small Children's Catechism(by Chris Schlect) 번역 카리타스 2014.09.20 928
737 벤자민 워필드가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 쓴 글 1 등불 2014.09.19 1119
736 어느 장로교단의 재앙 주나그네 2014.09.18 1067
735 9월 19일 (금) 신학강좌 공지입니다. 별표 2014.09.18 792
734 2014 퓨리턴 컨퍼런스('퓨리턴 신학과 한국 교회') 3 file 주나그네 2014.09.18 1268
733 축복대성회 2 주나그네 2014.09.13 980
732 제 맘대로 진행하는 풍성한 한가위 맞이 도서증정 이벤트!! 4 file 별표 2014.09.09 917
731 약속과 선물 1 주나그네 2014.09.04 909
730 감사 릴레이 주나그네 2014.09.04 976
729 9월 5일 (금) 신학강좌 공지입니다. 1 file 별표 2014.09.03 874
728 8월 22일 (금) 신학강좌 공지입니다. file 별표 2014.08.18 824
727 G.I 윌리암슨이 해설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강해- 25장 5,6항(6항 교황에 대한 언급과 해설) 1 라마드 2014.08.16 1245
726 하나님아는지식에 대한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2 바로알자 2014.08.15 886
725 그대에게 2 요한 2014.08.12 88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2 Next
/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