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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테오도르 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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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 베자(1519-1605)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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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파렐, 칼빈, 베자, 존 낙스. 제네바 대학교(제네바 아카데미 후신) 종교개혁 기념벽에 새겨진 네명의 종교개혁자. 1909년 칼빈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내 이름은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1519-1605) )입니다. 혹시 종교개혁에 관심을 갖고서 제네바를 방문해 본 적이 있다면 제네바 대학교 종교개혁 기념 벽 가장 중앙에 새겨진 종교개혁자 네 명의 형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정면에서 응시하는 왼쪽 순서부터 기욤 파렐, 요한 칼빈, 나, 그리고 존 낙스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벽은 나의 스승이자 동역자인 칼빈의 탄생 400주년을 맞아 1909년에 제작된 것입니다. 칼빈 상을 중심으로 옆자리에 기욤 파렐과 나의 모습이 새겨 있다는 것은 우리가 칼빈과 보통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겠지요.


사람들은 나를 향해 “칼빈의 후계자”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칼빈신학의 완성자”라고 나를 추켜세우기도 합니다. 19세기에 가장 저명한 교회 역사가로 손꼽히는 필립 샤프(P. Schaff)는“스위스 종교개혁의 역사는 칼빈의 신실한 친구이자 계승자인 테오도르 베자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끝이 날 수 없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나에 대해 긴 글을 소개합니다. 나의 스승인 칼빈과 견주어 평가해 주다니 나로서는 영광스러운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후대인들이 있을 줄로 압니다. 그들을 위해 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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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부르고뉴 공국(빨간색 동그라미 지역)



나는 부르고뉴 공국(중세 때 프랑스 지배하에 있던 소국)의 어느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1519년). 나의 아버지는 명문가 출신으로 귀족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어머니는 내가 세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파리 의회 의원이며 영주인 삼촌(니콜라스 드 베자)에 의해 양자로 입양되었습니다. 나의 재능을 발견한 삼촌은 나를 위해 자신의 돈과 영향력을 이용하여 최고의 교사를 구해 주었습니다. 나는 당대 최고의 그리스어 학자인 멜기오르 볼마르(Melchior Volmar)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볼마르 선생님의 집에 함께 지내면서 많은 것을 사사받았습니다. 그때 우연히 그의 집에서 대학에서 선생님에게 배움을 받던 칼빈을 처음 만났습니다. 칼빈과 나는 10살이나 나이차가 있었기에(칼빈이 연상임) 그와 가까워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십 수 년 쯤 지나서 제네바에서 재회하게 될뿐 아니라 함께 종교개혁 운동에 동참하게 되다니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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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기의 젊은 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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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자의 라틴 시집, 유베닐리아

 


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열심히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법학보다 문학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볼마르 선생님을 통해 복음을 전해 들었지만 복음대로 살기에는 너무나 혈기왕성하였습니다. 나는 당시 파리에 최상류층 사람들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였습니다. 나는“유베닐리아(Juvenilia)”라는 시집을 발간한 후 일약 유명 시인이 되었습니다. 돈과 명예가 나를 교만과 타락의 나락으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것들로부터 구해 내시기 위해 중병을 허용하셨습니다. 그즈음 개신교인에 대한 강력한 핍박을 피해 칼빈이 사역하는 제네바로 이주하였습니다. 그 망명으로 인해 나의 모든 책들을 불태워졌고 나는 도망간 이단자로 단죄되었습니다.



하지만 칼빈과 제네바는 나를 두 팔 벌려 맞아주었습니다. 아마도 칼빈은 내가 파리에서 누린 부와 명예와 세속적인 삶을 버리고 제네바에 오게 된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칼빈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보배”라고 부르면서 소개하였습니다. 또한 칼빈은 내가 합법적으로 혼인할 수 있도록 애썼을 뿐 아니라, 나에게 반감을 품은 이들이 나를 비난할 때 나서서 나를 변호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칼빈의 호의로 로잔대학교에서 그리스어 교수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나는 힘든 일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신학과 교리를 변증하는 일에 왕성하게 활동하였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중요한 몇 권의 책들과 시편집을 출판하였기도 하였고 예정 교리를 반박하는 자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파렐(W. Farel) 등과 함께 박해받는 지역의 교회와 개신교인들을 찾아가 그들을 위해 논증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진 일입니다. 이역시도 칼빈의 탁월한 지도와 섬세한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사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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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바 교회의 동역자들,  (왼쪽부터) 파렐, 베자, 비레, 칼빈


로잔에서의 성공적인 사역을 마치고 나는 다시 제네바로 돌아왔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칼빈은 때마침 곧 신설될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가르칠 교수를 찾고 있었습니다. 내가 제네바에 도착하자마자 칼빈은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학교를 맡아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칼빈은 오래전부터 나를 자신의 후계자로서 염두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부르심을 받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쳐 놓았습니다. 나는 칼빈의 추천으로 제네바 목회자회 의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모든 이들로부터 명실상부한 칼빈의 후계자로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나는 칼빈이 내 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로 가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내가 그의 소천 소식을 듣고 달려왔을 때, 그는 이미 영원한 안식 가운데 거한 후였지만 그의 모습은 너무 평온하여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나는 나의 스승이자 동료인 종교개혁자 칼빈의 장례를 주관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동시에 교회의 위대한 빛으로서 그가 남긴 유업을 계승해야 할 책임을 도맡았습니다. 나는 우선 칼빈에 관한 전기를 집필하였습니다. 나는 후세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기를 바람이 있었지만, 그보다도 그가 하나님 앞에서 일관된 신앙과 신념으로 일구어 낸 종교개혁의 정신이 모든 세대의 성도들의 가슴 속에 활활 타오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칼빈의 전기”를 펴냈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 일을 매우 적절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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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자가 직접 번역한 사본(Codex Beza), 이 사본은 베자의 언어적, 인문학적 소양이 유감없이 발휘된 성경으로 당대에 가장 인기가 높은 성경이었다. 베자는 1581년에 이 사본에 자신이 이름을 붙여서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기증하여 학생들이 텍스트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는 칼빈이 나에게 남긴“아무 것도 변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고귀한 유언에 따라 모든 일에 있어서 그가 품었던 종교개혁 사상과 이상이 잘 전달되도록 하는 일에 헌신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나는 칼빈에 이어 40년 간 제네바 교회를 섬기는 동안 적지 않은 열매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내 이름으로 된 성경 번역(베자 사본, Codex Beza)은 훗날 “제네바 성경”과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의 원천이 되었으며, “프랑스 개혁교회 역사”와 “순교자 열전”은 당시 종교개혁 역사를 객관적으로 고증하는 문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내가 학장으로 섬긴 “제네바 아카데미”는 전 세계 개혁교회의 신학자와 목회자를 양성하는 요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동안 유럽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강의실에 모여 들었으며, 학 교로부터 저명한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정열적으로 신학 관련 주제를 다룬 수십 권의 책들을 출간하였고, 진리의 싸움을 위해 많은 신학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고통하는 성도들을 위해 수백 편의 서신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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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세기 대표적인 종교개혁자들, 칼빈과 베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파란색 동그라미). 이 그림은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돈독한지를 시사하는 듯 하다.

 


대중이 나를 “칼빈의 후계자”로 부르는 것은 나에겐 매우 영광스러운 칭호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내가 한 모든 일은 누구를 위한 목적에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와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행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나를 향한 칭찬과 존경과 경탄이 있다면 오직 우리의 구주되시는 삼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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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왼쪽)과 칼빈의 초상화


p.s. 이 글은 솔리데오글로리아 교회에서 주최한 종교개혁 기념일에 맞춰 우리 자녀들과 테오도르 베자에 관해 공부하면서 "만약 베자가 우리 교회 자녀들에게 자신을 직접 소개한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상상하여 작성한 편지입니다. 그런데 글 구성은 자유롭지만, 글에 소개된 내용은 모두 역사적 사실(fact)입니다. 교회 자녀들이나 새신자들이 종교개혁자에 대해 좀더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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