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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기욤 파렐입니다


내 이름은 기욤 파렐(Guilhem Farel, 1489-1565)입니다. 내 고향은 프랑스 알프스 산맥 지대 근처에 있는 갑(Gap)이라는 곳이어서 프랑스어로 기욤이라고 불리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나를 윌리엄 파렐(William Farel)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든 불러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종교개혁 사상이니까요.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 -특히 후대인들-은 나의 이름 앞에 여러 가지 수식어를 붙이기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스위스 개신교의 개척자”, “프랑스 종교개혁의 엘리야”, “불같은 성격의 논쟁가”, “천둥소리같은 용감한 설교자”, “칼빈의 선배이자 동역자”, “칼빈의 길을 예비한 사자등등 아주 다양한 표현으로 나를 묘사하곤 합니다. 나에 관한 관심의 표현이니만큼 뭐라 하든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내 자신보다는 내가 믿는 하나님과 나의 신앙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소망했던 종교개혁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랍니다.


2358363.jpg▶책 표지에 그려진 기욤 파렐 초상화



사실 나는 아주 철저한 로마 카톨릭주의자였습니다. 나의 영적 스승 자크 르페브르(Jacques Lefevre) 선생님을 만나기전까지는요. 르페브르 선생님은 나의 또다른 영적 멘토이자 동료인 칼빈(John Calvin)의 스승이기도 하셨지요. 이분은 신약성경을 나의 모국어(프랑스어)로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바울의 서신서들과 루터의 이신칭의 사상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과 의식들이 인간이 만들어 낸 고안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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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사제들의 가르침, 로마 교회의 의식과 종교 행위를 다 합해도 성경 한 권만 못하다(한 권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삽화


이후에 나는 더욱 성경을 깊이 연구하였고, 마침내 보편적인 기독교의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성경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한 가르침을 전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유럽의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신적인 오류와 비성경적인 의식들을 강하게 비판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분노한 사제들과 수도사들은 나를 이단이자 사탄이라고 모욕하고 생명의 위협을 가하기도 하였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내가 참석한 여러 번의 종교 논쟁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참된 복음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나를 향해 감당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하면서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나의 일생의 섬김 중에서 가장 큰 기쁨을 이야기하라면나는 주저 없이 제네바에서 칼빈과 함께 하였던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나는 스위스의 어느 도시(바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위험인물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결국 추방되어 제네바로 오게 되었습니다(1532). 나는 제네바에 오자마자 공개 신학 논쟁을 통해 개신교 교리를 설파하고 로마 교황제도를 맹렬히 비판하는 설교로서 종교개혁 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서서히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지만나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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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그로 향하던 칼빈에게 제네바 교회개혁에 참여할 것을 강권하는 파렐



그때 나는 칼빈이 바젤로 가는 길에 제네바에 잠시 머물러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독교 강요>를 작성한 젊고 탁월한 신학자인 칼빈을 만날 수 있다니 너무나 흥분되었습니다. 나는 밤중에 그를 찾아갔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칼빈에게 교회 개혁을 이루어 가는 사역에 함께 동참해 달라고 점잖게 부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네바에 남는 것보다는 자신의 학문 연구가 더 우선이라고 답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한 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칼빈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자 나는 화를 내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의 학문 연구가 하나의 구실에 불하다고 선언하오. 만약 당신이 이 주님의 사역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을 당신을 저주할 것이오!” 내가 이렇게 소리친 결과가 어땠는 줄 아세요? 이후로 칼빈은 나와 함께 제네바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종교개혁의 모델적인 도시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칼빈이 그때 나의 강권하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을 자신의 시편 주석에 이렇게 기록했다고 하더군요. “파렐은 나를 제네바에 머물도록 강권하였는데, 그가 사용한 수단은 상담이나 권면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협박이었다. 나는 이러한 폭언이 마치 하나님께 그의 전능하신 손을 내밀어 나를 붙드시는 것과 같이 느꼈다.”라고요. 변명같이 들를지 모르겠지만 칼빈을 협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한 것뿐입니다. 내 방식대로 좀 강하게 말이지요.



아무튼 우리 둘은 합심하여 제네바 교회를 성경에 따라 철저하고 조화롭게 개혁하였습니다. 훗날 제네바로 망명왔다가 고국(스코틀랜드)로 돌아간 종교개혁자 존 낙스(John Knox)는 제네바에서의 경험에 대해서 사도 시대 이후 지상에서 가장 완전한 그리스도의 학교였다. 다른 곳에서 나는 그러한 곳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더군요.

나는 지금도 칼빈을 제네바에 남게 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칼빈은 정말 놀랍고 탁월한 사람입니다. 진리에 관한 한, 그보다 더 엄격하고 현명하며 지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칼빈이 제네바에서 생을 마칠 즘에 나의 친구에게 내가 칼빈 대신에 죽을 수만 있다면! 그는 어마나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따라 우리도 이처럼 우리의 생을 끝마칠 수 있도록 해 주시길 바라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진심이었습니다. 나는 그보다 20살이나 많았지만, 기꺼이 그를 선생처럼 생각하였습니다. 한때 위기를 맞은 칼빈이 제네바에서 쫓겨날 때, 기꺼이 그와 함께 동행하였던 것도 그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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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샤텔(Neuchâtel) 교회 정문을 바라보면서 서 있는 파렐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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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높이 치켜들고 있는 파렐의 동상. 그는 천둥같은 음성과 탁월한 웅변술로 오직 성경만을 강조하는 열정적인 설교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칼빈은 다시 제네바로 돌아가 남겨진 종교개혁의 과업을 완수하였고, 나는 이전에 사역하던 뇌샤텔로 돌아가 개신교 교회를 세우고 보다 더 열정적으로 교회개혁 운동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나는 특히나 설교와 성찬과 권징을 말씀대로 개혁하는 것과 교리를 바르게 가르치는 사역에 전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기회가 닿을때마다 여러 지역을 방문하여 교리로서 교회의 하나됨을 강조하고 개혁교회 성도들을 위로하며 바른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나의 열정적인 설교와 기도를 보면서 베자(Theodore Beza)천둥소리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나의 이러한 성격과 행동이 오해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나의 친구 중에는 나에게 온건하고 온유한 성품을 가지라고 하며 좀더 사려 깊게 행동하라고 촉구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조언을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나는 존경하는 동료이자 개혁자들인 친구들에 비해 냉철한 판단력과 신중한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나는 칼빈처럼 엄밀한 신학자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나는 진리를 전파한 맹렬한 설교자요, 진리편에서 주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한 열정적인 목회자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날마다 쇠()할지라도 나로 인해 진리가 흥()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나를 기억하기보다 내가 소리 높여 강조하고자 한 성경 진리에 더욱 착념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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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바 대학 벽면에 설치된 네 명의 종교개혁자 부조상. 왼쪽부터 기욤 파렐, 존 낙스, 데오도르 베자, 존 낙스. 이들의 손에 한결같이 쥐어져 있는 성경책은 오직 성경을 부르짖은 종교개혁 정신을 반영한다.



p.s. 이 글은 솔리데오글로리아 교회에서 주최한 종교개혁 기념일에 맞춰 우리 자녀들과 기욤 파렐에 관해 공부하면서 "만약 파렐이 우리 교회 자녀들에게 자신을 직접 소개한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상상하여 작성한 편지입니다. 그런데 글 구성은 자유롭지만, 글에 소개된 내용은 모두 역사적 사실(fact)입니다. 교회 자녀들이나 새신자들이 종교개혁자에 대해 좀더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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